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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1일 0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21일 14시 12분 KST

똑똑한 당신도 한순간에 넘어간다

"큰일났어요! 아드님이 외출을 나왔다가 민간인이랑 싸움이 붙어서 크게 다쳤습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온가족이 혼비백산했다. 동생이 군대에 간 지 채 1년도 안 된 때였다. 얼마 전 면회 때 보고 온 비쩍 마른 모습에 안 그래도 부모님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때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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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s de La Tour 'Cheater with the Ace of Diamonds'

"큰일났어요! 아드님이 외출을 나왔다가 민간인이랑 싸움이 붙어서 크게 다쳤습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온가족이 혼비백산했다. 동생이 군대에 간 지 채 1년도 안 된 때였다. 얼마 전 면회 때 보고 온 비쩍 마른 모습에 안 그래도 부모님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때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으니!

"어머어머어머... 우리 아들, 지금 어디 있어요?"

"지금 옆에 누워 있습니다. 잠깐 통화하세요!"

"어...엄...마... 나 좀 살려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영락없이 동생이었다. 다시 전화를 바꾼 그 사람은 얼른 병원에 가야 하니 50만 원을 부치라고 했다. 군대에 알려지면 영창에 갈 것이 뻔하니 누구도 모르게 얼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동생부터 살려야 하니 얼른 계좌 이체를 하자고 했다. 그러나 유일한 군대 경험자였던 아버지가 우선 확인부터 해보자고 했다. 군대에 전화를 걸어보니 마침 부대가 행군중이어서 본인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이 아닌가. 더 불안해진 엄마와, 뭔가 이상하다는 아버지의 의견 충돌이 빚어졌다. 내 생각에도 그깟 50만 원, 손해를 본다 해도 우선 부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결국 우리 가족이 택한 방법은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자는 거였다. 자동차를 타고 3시간 정도를 쉼 없이 달려 강원도에 있던 부대에 도착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는 반드시 동생을 확인해야 집에 갈 거라고 버텼다. 결국 부대에서는 군인 한 명을 안내자로 앞세워 행군을 하고 있는 현장까지 데려다줬다. 휴식을 취하며 앉아 있던 저 수많은 군인 중에 과연 동생이 있을 것인가. 마침내 저 멀리서 비쩍 마른 동생이 걸어 나오는 걸 본 순간 우리 가족은 만세를 불렀다. 동생이 무사하다는 기쁨과 함께 사기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뿌듯함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 울부짖는 동생의 목소리가 만약 진짜였다면 어쩔 뻔했나 싶어 소름이 돋기도 했다. 운전을 하는 내내 아버지 본인조차 혹시라도 진짜 상황이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다고 나중에야 털어놓으셨다.

실은 이것은 휴대폰도 없던 20년도 더 전에 벌어진 사건이다. 가족이 모일 때마다 가끔 이 에피소드를 화제로 삼는데, 얼마 전 동서가 똑같은 일을 당했다지 뭔가. 친정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옆에서 웬 노인네가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는 것이다. 너무 무서워서 자기도 모르게 전화를 끊고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멀쩡히 집에 계셨다고. 누구나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21세기 첨단 한국에서, 20년 전에나 먹히던 어이없는 보이스 피싱이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특히 군인, 노인, 어린 아이가 그 대상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의 특수한 형편 때문에 속아넘어가기도 쉬운 듯하다.

평소에 사기는 돈이 많거나, 유달리 사행심이 많거나, 아니면 약간 덜 떨어진 사람이 당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왔다. 그런데 20년 베테랑 검찰 수사관인 김영헌이 최근에 쓴 <잘 속는 사람의 심리코드>를 보면 그런 생각이 자만심이란 걸 알게 된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당하고, 아는 사람한테 당할 확률이 훨씬 높으며, 별 욕심이 없었던 사람마저도 순식간에 공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사기였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혀를 내둘렀던 '주유소 보석 반지 사기'를 소개한다. 주유소 직원 C씨가 일을 하고 있는데, 손님 A가 오더니 화장실에서 보석 반지 하나를 주웠는데 혹시 찾는 사람이 없었냐고 묻는다.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손님 B가 거기서 보석 반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혹시 떨어트리지 않았냐는 전화를 걸어온다. 마침 손님 한 분이 찾아주셔서 보관하고 있다고 하니, 그 반지가 비싼 거라서 정말 고마우니 반지 값의 10%인 20만 원을 사례비로 주겠다고 한다. 자기가 도착하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면서. 그때 반지를 주운 손님 A가, 바빠서 한 시간이나 기다릴 수 없으니 먼저 10만 원을 자기한테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직원 C는 어차피 조금 있다가 받을 돈이니 그러라고 하면서 자기 돈 10만 원을 내주었다. 그렇지만 하루가 지날 때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의 선량함을 믿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익이 생긴다는 마음에 잠깐 뇌가 마비되고, 눈이 먼 거였다.

얼마 전까지 <개그 콘서트>에서는 어눌한 조선족을 이용한 보이스 피싱 사기를 선보여 웃음을 주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눈에 뻔히 보이는 사기를 치는 사람은 없다. 최근 <시사인>에는 "기자도 당했다, 보이스 피싱"이라는 기사가 실려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사관, 검찰 등 차례로 전화를 바꿔가면서 큰소리까지 쳐대며 협박을 하는 통에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기자마저도 은행 보안카드 번호를 가짜 홈페이지에 입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연히 즉시 예금통장에 든 돈을 다 털렸다.

나 역시, 서울역을 배회하는 지갑 잃어버린 지방 교수님과 중년 여성에게 두 번이나 차비를 빌려준 경험이 있는데, 그거야말로 변함없이 반복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기라고 한다. 또한 지방에 혼자 내려가 있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먼저 학교 선배라고 잘해주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다단계로 끌고 들어가는 수법도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나만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 사기를 치려고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는 사기꾼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동생의 경우처럼 보이스 피싱에 당할 뻔한 경험이 있거나, 주유소 보석 사건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면 위급한 순간,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을까. 김영헌 수사관이 <잘 속는 사람의 심리코드>에서 소개한 한국에서 가장 빈번히 벌어지는 사기 전략 정도만 알고 있어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런 개인이 당하는 금융 사기는 한 사람의 피해로 끝나니 개인의 불운이라 치자. "대한민국은 국제 호갱님"이라는 뉴스를 들여다보니 정치를 잘못 해서, 또는 다른 나라나 기업과 잘못된 계약으로, 계약 후 먹튀를 하는 사기에서 까먹는 돈은 도대체 어떻게 막아야 하나. 불운한 국민은 막아줄 사람도, 안전 장치도, 잡아줄 수사관도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