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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30일 07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30일 14시 12분 KST

청년희망펀드? 대통령은 시민운동 아닌 정책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개혁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치하하면서 청년 일자리 마련을 목적으로 하는 '청년희망펀드' 조성을 제안하였습니다. 자신부터 솔선수범하여 2천만 원을 우선 내고 월급의 20%를 매월 낸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으로 제안했겠지만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큽니다.

대통령이 왜 시민운동을 주도하나?

우선, 청년희망펀드의 방식이 시민운동이라는 점이 걸립니다. 대통령도 시민이므로 시민운동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부 수반으로서 청년 일자리를 걱정한다면 시민운동보다는 자신의 공식 권한을 활용하여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으로 '재단법인 청계'를 만들면서 <재산 기부 소회>를 발표했을 때도 비슷한 논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구절을 인용해 봅니다.

첫째로,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서 제 재산을 의미롭게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면 이런 국민을 위해 개인 재산만이 아니라 국가 예산을 의미롭게 쓰는 방법을 당연히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강부자 정책을 추구하고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사랑이 없는 물질은 의미가 없다"고까지 했으면서.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7109

또 청년희망펀드는 대통령이 제안한 이상 자벌적인 시민운동이 될 수도 없습니다. '자발적'인 모금인 국군장병 위문금, 수재의연금 등이 조세와 다름없음을 경험한 분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상의 조세로 사업을 벌일 작정이라면 아예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합니다. 더구나 이번 펀드는 대통령이 앞장선다는 점에서 압박 강도가 훨씬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부터 정치인, 고위공직자, 기업인이 경쟁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일반 공무원, 직장인도 어쩔 수 없이 뒤를 이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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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청년희망펀드' 기부약정서에 서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동개혁 반대 무마용 "청년 일자리"

펀드 조성을 제안한 동기인 "청년 일자리 늘리기"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연금개혁 때도 그랬듯이 청년 문제를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이유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청년 문제가 선배들이 양보하지 않아 생긴다고 홍보하는 듯합니다. 노동개혁에 해고 유연화와 임금 제한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다 보니 반대 세력의 세대간 분열을 촉발하려는 건가요?

노동개혁으로 기업이 청년 고용을 늘릴지도 미지수입니다. 작년 3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이 약 700조 원이나 되는 걸 보면 이들이 일자리를 만들 생각이 없거나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은 그대로 두고 화살을 노동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노동개혁 중 임금피크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제도는 임금이 계속 올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기에 정점을 찍었다가 하락하는 제도로서, 청년 고용과는 무관합니다. 임금피크제의 본래 취지는 생산성과 임금이 비례하도록 만들자는 데 있습니다. 저는 이런 취지에 찬성하지만, 임금피크제는 소득피크제와 같이 실시해야 일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대기업 고위직의 생산성이 평사원의 몇 백 배, 몇 천 배가 될 정도로 높아서 그런 고임금을 받는 걸까요? 인간의 능력 차이는 넉넉잡아도 평균의 10배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임금피크제를 공무원에게 적용하지 않는 것 또한 의문스럽습니다.

박 대통령의 애정은 청년보다 재벌과 기업에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보면 박 대통령의 애정은 노동자나 청년이 아니라 재벌과 기업 쪽에 쏠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자신이 청년을 위해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기부를 하면서도 경제 권력에는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 해석이 맞지 않을까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한 때 재벌의 사내 유보금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으나 그 뒤에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애정이 어디에 있는지 최 부총리가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민운동을 제안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정치 학습을 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 시대에 새마을운동 등 관제 국민운동을 배웠고 또 자신이 새마음운동으로 국민의 정신까지 개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민운동이 아니라 대선 공약을 정책으로 옮기기 바랍니다. 공약대로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추진하면 경제정의가 향상될 뿐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져 청년 일자리도 늘어날 것입니다. 청년희망펀드와 같은 겉치레 화장술보다는 일관성 있는 정공법을 기대합니다.

* 이 글은 대구지역 인터넷 매체인 <평화뉴스>에도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