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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5일 06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6일 14시 12분 KST

바른정당, 새누리 2중대가 되지 않으려면

뉴스1

'바른정당'이 새누리당에서 갈라지면서 정치적 보수의 아성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 지역의 기류 변화가 예상된다.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에드먼드 버크 이래 보수주의는 전통과 관습, 기존의 권위와 가치관을 존중하고 재산권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이해되어 왔다. 바른정당의 가칭이 '개혁보수신당'이었고 탈당 때 발표한 선언문에도 "훌륭한 전통과 유산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바른정당의 지향은 일견 버크의 보수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사실, 해방 후 오랫동안 '보수'라는 단어의 어감은 좋지 않았다. 봉건적이고 고루한 구시대를 벗어나 하루 바삐 근대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선배 교수 한 분에게 무심코 "보수적"이라고 했다가 몇 초 동안 레이저 광선을 맞은 적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면서 보수의 이미지가 반전되었다.

1981년에 당선된 미국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이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였고 영국에서도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집권하였다.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초에 민정당, 민주당, 공화당이 민자당으로 통합하면서 '보수대연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보수라는 단어가 적어도 나쁜 어감을 주지는 않게 되었고 사회 전반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바른정당이 발표한 정강정책(가안)에는 "재벌 개혁과 공정한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 정의[를] 실현"하고 "부패와 특권 없이 모든 국민에게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며 "따뜻한 복지체계와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고 되어 있다. 바른정당의 핵심 인물인 유승민 의원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교육·노동·복지는 합리적이고 개혁적으로 한다, 중산층·서민을 겨냥한다, 그런 점에서 예컨대 재벌 문제는 기존 새누리당 정책과 달라야 한다." 레이건, 대처 이래 보수의 지향은 최소국가, 자유방임, 재분배 거부 등이었는데 바른정당은 이와 달라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보수'를 강조하는가?

바른정당이 선언문과 정강정책(가안)에서 국방력을 강조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강력하고 단호한 응징태세를 갖추겠다고 한 것을 보면, 이들의 브랜드는 상식적 의미의 보수보다 강한 국방력에 방점이 있다. 유승민 의원이 초기부터 사드 배치에 찬성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반대자를 비판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군사력 강화는 장기적으로 평화를 담보하기보다 오히려 소모적 군비경쟁을 야기하기 쉽다.

미국 닉슨 대통령의 해빙 외교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같은 선례에서도 보듯이 군사력만이 아니라 넓고 멀리 보는 외교력도 매우 중요하다. 바른정당이 정강정책(가안)에서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존중"한다고 한 것을 보면 이걸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바른정당이 국방력을 강조하면서 보수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득표 전략이라는 추측이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현대사 탓에 북한에 대한 증오심과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이승만 정권 이래 진보는 종북이거나 그 사촌이라는 편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풍토에서 한쪽이 보수를 선점하면 다른 쪽을 진보라는 불리한 위치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소위 '안보 장사'가 재미를 본 전례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근거 없는 의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심이 억울하다면 바른정당은 '보수'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당명에서 '보수' 두 글자를 뺀 김에, 스스로 다짐하듯이 "깨끗하고 따뜻한 대한민국"만을 지향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누리당 2중대가 되어 '이러려고 탈당했나?'하고 자괴감에 빠질까 우려된다.

* 이 글은 영남일보(2017/1/23)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