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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31일 12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31일 14시 12분 KST

연기 앙상블이 빛나는 영화

이 영화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후, 연극처럼 한 번에 주욱 찍었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통으로 들어있어 극히 자연스럽다. 특히 리액션(반응) 샷들이 얼마나 좋은지 깜짝 놀란다. 왜냐면 리액션 샷은 보통 상대 배우 없이 그냥 상상해서 하거나 연출부가 대충 던져주는 대사를 받아 배우가 혼자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선 모든 리액션들이 실제로 상대 배우의 액션을 받아 나오는 진짜 '리액션'들이기 때문이다.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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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영화는 절대 아니다. 별 커다란 내용 없이 세 명의 여자들이 수다 떠는 게 전부지만 연기가 좋아 계속 보게 만드는 신기한 영화이다. 극단 차이무에서 했던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찍었는데 카페 하나 빌려 하루만에 다 찍었다고 한다. DSLR 카메라 4대를 설치하고 연극처럼 전체를 쭉 한번에 가면서 찍은 후 나중에 편집을 해서 극장 개봉한 것이다. 심지어 배우들도 연극과 동일하다.

영화로 치면 너무 날로 먹은 거 아냐 싶기도 하고, 딱 한 공간만 나와 시시해보일 수도 있지만 영상화된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재미있고 신선하다. 8,000원에 연극 한 편 감상한다 생각하고 본다면 결코 아깝지 않다. 물론 연극보다 더 가까이 배우들을 클로즈업으로 지켜볼 수 있다. 특히 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보길 권해드린다. 이토록 훌륭한 연기 앙상블은 기존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다. 왜냐면 영화는 한 컷 한 컷 나눠찍기 때문에 숙련된 배우라 해도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연극 배우 출신들은 처음엔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어 연기 톤이 컷마다 들쭉날쭉하기도 한다. 심지어 감독도 자기가 찍으면서 어떤 것이 OK컷인지 헷갈린다. 편집을 해서 붙여봐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한 후, 연극처럼 한 번에 주욱 찍었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통으로 들어있어 극히 자연스럽다. 특히 리액션(반응) 샷들이 얼마나 좋은지 깜짝 놀란다. 왜냐면 리액션 샷은 보통 상대 배우 없이 그냥 상상해서 하거나 연출부가 대충 던져주는 대사를 받아 배우가 혼자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선 모든 리액션들이 실제로 상대 배우의 액션을 받아 나오는 진짜 '리액션'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상수 감독식의 롱테이크도 아니다. 컷은 무지 많다. 하지만 완전 통으로 쭈욱 찍었으니 거의 다큐멘타리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기존 영화라면 편집해버렸을, 배우들의 대화가 끊기는 순간을 남겨놓아 여운이 근사했다. 아울러, 웨인 왕의 <스모크>와 <조이럭 클럽>을 기억하는 영화팬들이라면 영화를 보며 마음이 훈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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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의 하비케이틀을 연상케 하는 카페주인 김중기 배우가 (극중 한 배우에 의해 문익점으로 착각되었던) 고 문익환 목사 흉내를 내며 90년대 초 대학가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1988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김중기야말로 전대협으로 이어지는 486운동권의 아이콘이 아니었던가. 운동권 동료들처럼 정치계로 안 가고 전혀 다른 배우의 길을 선택한 그가 카페주인으로 부채를 연신 부치며 여유롭게 앉아 여자들 인생을 엿듣는 모습에서 뭔가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 일상 속의 대화나 부질없는 수다라 해도 묵묵히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는다. 액션만 있고 리액션이 없는 사회란 인간미가 없고, 팍팍하기 그지없다. <씨, 베토벤>은 영화의 형식에서도, 그리고 주제 면에서도 리액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독특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영화란 무엇인가? 왜 영화는 연극과 달라졌는가? 그것은 영화가 편집을 통한 리액션 샷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만이 가진 클로즈업 기능을 통해 배우들의 반응이 담긴 리액션을 보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실험적이면서 올해의 가장 싼 제작비의 초저예산 영화는 2014년의 가장 빛나는 앙상블 연기를 성취한 작품이자, 배우들의 모든 리액션이 실제로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감히 전 세계적으로도 별로 시도된 적이 없는 영화사에 남을 새로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저예산 영화는 결국 연기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감독과 배우들의 답이 이 영화 <씨, 베토벤>에 담겨 있다. 유 머스트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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