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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6일 12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6일 14시 12분 KST

예술인의 삶은 불안정해도 되는 걸까

예술인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에 대해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이 두려움이란 어디까지나 창작이 어렵고 불확실할 때 느끼는 개인적인 것이다. 만일 예술인이라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곡해하면 곤란하다. 이 구별점을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예술인이란 당연히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누려도 되는 존재로 평가절하 당하기 쉽다. 결국 쌓이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라는 냉정한 눈초리라든가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우울한 평가이다.

사진 PhotoFunia, 그림 서유경

스스로를 씨네필(Cinephile)이라고 부르던 한 지인이 있었다. 어느 여름 날, 그는 상기된 모습으로 한 유망 영화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회화가 전공인 것을 살려서 영화 미술팀 스태프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취업을 축하해주었고, 그 영화가 뉴스에 실리는 것을 볼 때마다 괜히 내가 참여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영화판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면서 냉소를 지었다. 일이 낮밤 없이 너무 힘든데다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 문제로 충돌이 생겼다는 것이다.

당시 스물 세 살이던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꿈이 있는데 끝까지 하고 나와야 엔딩크레딧에 자기 이름이 올라오는 걸 보기라도 하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 눈에 그는 자신의 열정에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생각은 바뀌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나 역시도 노동 아닌 노동을 경험하면서 예술인에게 꿈과 열정을 연료로 삼아 일하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강요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낭만에 현혹되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술인에게 꿈과 열정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왜 예술인의 삶은 불안정해도 용인가능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예술과 예술인의 사이에 자리잡은 어떤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선입견의 근저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데이비드 베일즈와 테드 올랜드가 공저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를 비판적으로 접해보길 바란다. 이 책에서는 예술가란 세상과 예민한 감각으로 조우하며 하얀 지평에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존재라고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에게 두려움이란 숙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예술인이 느끼는 두려움의 정체에 대해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이 두려움이란 어디까지나 창작이 어렵고 불확실할 때 느끼는 개인적인 것이다. 만일 예술인이라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곡해하면 곤란하다. 이 구별점을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예술인이란 당연히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누려도 되는 존재로 평가절하 당하기 쉽다. 마음 속에서 무엇이 정당한 것인지 가늠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감당해야 할 것이 떠오른다. 당면한 문제에 눈을 감고 애꿎은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거나 현실을 비난한다. 결국 쌓이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라는 냉정한 눈초리라든가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우울한 평가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예술인 스스로 권리의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이익을 누릴 수 있는가?"라는 차원 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변화하려면 비판을 해야 하고, 비판을 하려면 당면한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한다. 결국 그 과정에서 딜레마에 마주칠 수밖에 없겠지만, 딜레마는 적어도 선택지를 따져봄으로써 무엇이 최선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예술을 하고 싶다면, 예술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면, 이제 우리가 처한 두려움에 선을 긋자.

[사진 서비스 제공] PhotoFunia

[그림] 서유경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