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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10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8일 14시 12분 KST

구로사와 아키라가 나아간 세계

구로사와 아키라는 좁은 열도에서 세계로 눈을 돌렸다. 일본영화계의 이단아라 불렸지만 결국 세계영화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한계와 편견을 베어내고 세계로 나아간, 그는 전설이다.

<라쇼몽>은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감독 개인에게 세계적인 거장으로서의 이력을 부여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개척한 작품으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당시 일본영화계를 이끄는 건 유미주의 형식을 중시하던 미조구치 겐지와 오스 야스지로였다. <라쇼몽>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은 동시대 일본영화계에도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미조구치는 12살이나 어린 새까만 후배가 자신이 얻지 못한 대단한 영광을 일찍 차지했다는 사실에 울분을 삼켰다. 결국 술도 끊고 작품에 전력한 미조구치는 이듬해 <오하루의 일생>을 통해 베니스영화제 본상을 수상한다. 이는 미조구치의 뛰어난 재능에서 기인한 사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구로사와의 <라쇼몽>이 일본영화에 대한 관심을 활짝 열어놓은 덕분이었다. 실로 '라쇼몽 효과'라 불릴 만한 사건이었다.

친문학적인, 반시대적인

구로사와의 <라쇼몽>은 아쿠타가와의 <라쇼몽>으로 이야기의 입구와 출구를 세우고 <덤불 속>으로 통로를 확보해내듯 각색된 영화다. 세찬 폭우가 내리는 '라쇼몽(羅生門)'을 다각도로 비추는 몽타주 컷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 아래 앉아 있던 나무꾼과 승려가 비를 피하는 행인을 만나 자신들이 겪은 어떤 사연을 고백하는 이야기다. 그 사연인즉슨 이렇다. 백주대낮의 깊은 숲 속에서 어떤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용의자로 붙잡힌 도적과 현장에 있었던 남자의 부인, 그리고 죽은 남자를 몸 안에 빙의한 무녀, 그리고 이를 목격한 나무꾼은 차례로 자신이 체험하거나 목격한 사건에 대해 진술해 나간다.

아쿠타가와의 소설에 기반한 <라쇼몽>과 같이 구로사와는 다양한 고전문학 위로 자신의 창작적 뿌리를 내렸다. 사실 구로사와는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슈샤 서양화학교에 입학한 뒤,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마르크시즘 대신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러시아 문학에 심취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나 <맥베스>를 일본의 정서로 해석한 <란>과 <거미집의 성>을 비롯해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을 영화화하는 등 다양한 고전문학 작가들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고스란히 자신의 작품에 투영해내곤 했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그렇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매혹시킨 작가는 없었다"고 밝힌 도스토예프스키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실제로 <라쇼몽>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영화화하기 위한 준비였음을 고백한 바 있는 구로사와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인물들의 고통에 천착하듯 기술해나가는 것처럼 인물들의 고통을 면밀히 살피는데 주력한다.

이런 경향은 구로사와의 현대극 안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데루스 우잘라>, <산다는 것>과 같은 구로사와의 현대극 속 인물들을 두고 일본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이처럼 말했다. "그들은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고 자신이 사는 방식을 스스로 정한 뒤 자신만의 고뇌 속에서 혼자 고통 받는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의미를 스스로 발견하는 인간들이다. 그 극단적인 폐쇄적 태도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는 대세순응적이라 불리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주장이 담긴 것 같다." 일본 최고의 문호로 꼽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가운데 <라쇼몽>과 <덤불 속>을 각색해 영화화한 <라쇼몽>에서도 이런 태도는 깊게 드러난다.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을 펼치는 네 인물은 저마다 설득력 있는 개연성을 획득함으로써 되레 진실을 미궁으로 밀어 넣어버린다. 결국 '진범은 누구인가'라는 후더닛 구조의 의문에서 출발하는 <라쇼몽>은 진술의 나열과 함께 시작점의 의문을 희석시키고 같은 사건을 진술하는 인물들의 입장 차이에 대한 심리적 의문에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사실 각자의 진술 과정은 저마다의 죄의식을 무화 시키기 위한 변명이자 합리다. 이는 곧 당시 전후 일본 사회에 만연된 가치판단의 부재를 직시하는 것이었으며 대세순응적인 태도에 반발한 구로사와의 반시대적 심리와 깊게 연관돼 있다. 이런 인물들의 태도는 '라쇼몽 효과'라 일컫는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예시로서 자리잡았다.

동서양을 녹인 세계적 경지

구로사와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무성영화 변사로 일하는 셋째 형 헤이고의 영향이었다. 헤이고는 구로사와를 곧잘 극장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구로사와는 다양한 영화적 형식을 체험했다. 무성영화가 자신의 영화적 기초임을 종종 밝혀온 구로사와는 말년에 쓴 자서전에서 "<라쇼몽>은 내가 무성영화를 연구하면서 얻은 생각과 의도를 적용시킬 시험장이 될 것이다"라며 제작 당시의 태도를 소회한 바 있다. 절제된 대사 속에서 인물의 표정이나 행위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무성영화에 대한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아쿠타가와의 <라쇼몽>은 어떠한 결말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부조리한 형태의 현재적 현상을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를 영화화한 구로사와는 원작의 태도에서 벗어나 부조리한 상황의 나열을 통해 유머를 발생시키고 끝내 휴머니즘을 각성시키는 작품으로 완결된다. 이는 시대와 풍경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한가운데서 인물의 위선을 고발하고 이를 통해 설득력 있는 웃음을 연출하며 끝내 희망적인 가치를 주장하던 오손 웰즈나 존 포드와 같은 대가들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예를 들면 <라쇼몽>에서 나무꾼의 마지막 진술을 통해 재현되는 도적과 사무라이의 우스꽝스러운 결투는 이에 앞서서 세 인물들의 진술이 각기 다른 양상을 재현하면서도 스스로를 비범하게 치장하던 태도와 대치되는 것이다. 이 차이가 역설적인 코미디를 발생시킨다. 실제적이고 진지한 상황에 놓여 있던 인물의 태도가 위선적인 과장으로 드러날 때, 그 역설적인 찰나가 희극적인 활기로 발전된다. 또한 윤리적인 몰락에 대해 개탄하던 인물들이 라쇼몽 아래서 발견한 어린 아이의 생을 거두게 만듦으로써 새로운 시대적 희망을 거머쥐게 만들고 이를 통해 휴머니즘을 각인시킨다. 이는 시대를 관통하는 원작의 염세적인 시선을 수용하는 동시에 보다 따뜻한 시대적 체온을 갈망한 구로사와의 입김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서구 고전영화들이 발전시킨 다양한 스타일이야말로 <라쇼몽>을 수놓은 영감의 보고다. 구로사와는 이를 통해 노와 가부키 같은 전통적인 일본연행의 형식을 고집한 당대 일본영화계의 풍토와 대척점에 섰다. 당시 일본영화에서 좀처럼 활용되지 않던 클로즈업을 비롯해서 깊은 숲 속까지 파고드는 과감한 트래킹 샷,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향력이 감지되는 숙련된 몽타주 기법, 일정한 간격을 지닌 플래쉬백의 반복적인 변주 등은 그 영향력을 대변한다. 또한 이를 정중동의 인물 배치, 명상적인 리듬감이라는 일본 연극의 전통적 형식으로 포장하며 동서양의 요소를 절충해낸다. 영화학자 노엘 뷔르시는 "내용에 봉사하는 서구 주류의 형식을 극한까지 밀고 나간 미학"이라며 구로사와를 예찬했다. 그의 영화가 단순히 서구 영화에 대한 모방을 넘어서 동서양의 특성을 융화시키는 새로운 경지로서의 발전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특성은 구로사와가 동서양에서 각기 상대적인 평을 얻게 만들었다. 이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라쇼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나는 일본을 향해서가 아니라 전세계를 향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구로사와의 말처럼 그의 영화는 세계적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1990년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연단에 오른 구로사와는 말했다. "영화는 진정 놀라운 표현 수단이지만 본질을 꿰뚫어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나는 아직도 영화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등 할리우드의 후세대 거장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통해 그의 가치를 지지하고 대변해 왔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이름은 그가 태어난 지 한 세기에 이른 지금까지도 선명한 빛을 밝히고 있다. 열도의 한계를 이겨내고 서양의 편견을 베어내며 세계로 나아간 구로사와 아키라, 그는 전설이다.

kurosawa akira

1990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아키라(가운데) 감독이 조지 루카스(왼쪽),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MORNING CALM 매거진에 게재된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