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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9일 11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9일 14시 12분 KST

영화 포스터에 표현의 자유를 허하라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포스터는 흔히 '영등위'라고 일컫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등급 분류 심의에서 반려됐다. 설마 거칠게 폭발하는 폼페이 화산의 야성미가 위험해 보여서? 그럴 리가. 위험한 건 키스였다. 화산 앞에서 키스하고 있는 남녀가 선정적이라는 이유였다. 심의 기준에 맞춰서 변경된 포스터에선 입 대신 눈을 맞추고 있는 남녀가 자리했다. 영등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뇌를 헤집어 봐도 '이해'라는 단어를 발굴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음모론을 제기해야 한다. 설마 심의에 참여한 이들이 죄다 모태 솔로인 것인가?

키스하면 안 된다. 허벅지를 감춰라. 언제부터인가 금지된 것들. 영화 포스터에서 불가능해진 것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포스터는 흔히 '영등위'라고 일컫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등급 분류 심의에서 반려됐다. 설마 거칠게 폭발하는 폼페이 화산의 야성미가 위험해 보여서? 그럴 리가. 위험한 건 키스였다. 화산 앞에서 키스하고 있는 남녀가 선정적이라는 이유였다. 심의 기준에 맞춰서 변경된 포스터에선 입 대신 눈을 맞추고 있는 남녀가 자리했다. 영등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뇌를 헤집어 봐도 '이해'라는 단어를 발굴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음모론을 제기해야 한다. 설마 심의에 참여한 이들이 죄다 모태 솔로인 것인가?

<폼페이: 최후의 날> 포스터 심의 전후.

사실 영등위의 포스터 심의 기준에 대한 볼멘소리는 하루이틀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관계자들의 불만이 더해지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난 1년 사이에 지나치게 심사 기준이 엄격해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기준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지난달까진 별 문제 없었던 기준이 불과 한 달 사이에 불가 판정을 받게 되면 좀 황당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이다. 역시 지난해에 개봉된 <아메리칸 허슬>은 두 가지 이유로 심의에서 반려됐다. 여성이 입은 드레스에서 가슴 부위 노출이 너무 심하다는 것과 '개수작'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 '선정적인 묘사'와 '비속어 등의 표현'에 대한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다.

위부터 에이미 아담스 노출 때문에 반려된 1차 <아메리칸 허슬> 포스터, 에이미 아담스 수정 후 제니퍼 로렌스 노출과 '개수작'이란 카피 때문에 반려된 2차 <아메리칸 허슬> 포스터, 최종 수정된 <아메리칸 허슬> 포스터.

하지만 이런 판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전례들이 존재한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양 손으로 가슴 부위를 가린 두 여성을 앞세운 <손톱>(1994)이나 전라에 가까운 여인의 상반신이 드러난 <사마리아>(2004)의 포스터는 <아메리칸 허슬>을 반려시킨 '선정적인 묘사'라는 기준 안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미친놈'과 '엿같은'이란 활자가 각각 눈에 띄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과 <똥파리>(2008)의 포스터를 보자면 '개수작'이란 단어를 반려하는 게 좀 무색하지 않나. 최소한 일관성 있는 기준이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명문화된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영등위의 업무는 영화 포스터 '심의'가 아니라 '등급 분류 서비스'다. 하지만 영등위에서 분류된 영화 포스터의 등급 가운데 공공장소에 게재될 자격은 전체관람가 등급을 얻은 포스터에 한해서 부여된다. 영등위에선 포스터 '심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상 심의나 다름 없는 셈이다. 물론 이런 심의가 불필요한 건 아니다. 공공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선전물의 유해성은 사전에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전체관람가 기준은 영등위의 홈페이지에 명시돼 있다. 세부기준에 따르면 선정성과 폭력성, 반사회성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다. 명시된 기준에 따라 반려된 포스터 몇 가지를 해석해보자. 폭발하는 화산 앞에서의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은 '성행위와 관련하여 방법, 표정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에 해당되는 것일까. 혹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성관계를 묘사하는 것'일까. 아니면 폭발하는 화산 앞에서의 키스가 '반사회적'이거나 '폭력적'일까. 그렇다면 가슴골의 노출은 '가슴을 자세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일까. 드레스 상반신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가슴골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려된 <베일을 쓴 소녀>의 포스터는 단순히 가슴골의 선 일부를 지우고 전체관람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2013년에 개봉된 <컴플라이언스>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검색해보자. 노출에 대한 관계자들의 우려와 달리 전체관람가를 받는데 성공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포스터에서 노출된 가슴의 선정성이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베일을 쓴 소녀> 포스터 심의 전후.

전체관람가의 큰 기준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유해성 여부다. 성숙한 여인의 육체가 발육이 왕성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순 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유해한가. 그렇다면 해수욕장에서 비키니 입은 여자들도 청소년 입장에선 죄다 선정적일 테니까 청소년들의 해수욕장 출입을 금지시키고 거대한 장벽이라도 둘러야 하는 건가.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섹스를 권장하진 않는 건 섹스가 나쁜 것이라서 아니다. 그 행위를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섹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가르치는 것 역시 어른들의 의무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이 되레 잘못된 호기심을 부추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제도의 확립만큼이나 중요한 건 제도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가치관일 것이다.

사실 유해성의 큰 기준이 되는 건 노출 수위만이 아니다. 피를 비롯해서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을 사용하는 것 또한 철저하게 제한된다. 혹은 생채기나 흉터와 같은 신체 훼손의 흔적이 선명한 이미지도 사용이 제한된다. 흉터가 있는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미스좀비>의 포스터도 흉터들을 대부분 지우고 나서야 사용이 가능했다. 붉은 핏빛이 선연한 <300: 제국의 부활> 역시 선혈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흉터와 피를 '폭력성'의 흔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짙다. 해외에서 수입된 두 영화의 포스터는 수입된 일본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포스터에 활자만 한국어로 바꾼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 정도의 수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일 텐데 이런 포스터를 함부로 방치하도록 내버려두는 일본과 미국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보다 얼마나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것일지 걱정되지 않나. 혹은 그 아이들은 얼마나 폭력적일지 궁금하지 않나. 여기서 중요한 건 그 판단의 주체가 어른이란 사실이다. 사실상 믿음의 주체일지도 모른다.

전체관람가라는 기준 아래 집행되는 등급 분류는 때때로 지나치게 모호하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현재 영화 포스터 등급 분류에 참여하는 건 공모제를 통해서 위촉된 다섯 명의 위원이다. 사실상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가운데서 전체관람가 기준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다섯 명의 위원의 결정에 따라 영화 포스터의 유해성이 판단된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끼칠 유해성'이란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때때로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1년 단위로 교체된다. 매년마다 새로운 관점이 적용된다. 어쩌면 다섯 명의 시각을 통해서 전국민의 관점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물론 영등위 입장에서도 고심하는 지점이 있다. "아주 세밀한 규정까지 명문화하면 진짜 규제가 될 수 있다." 관계자의 말이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주 세밀한 규정까지 명문화하기에 앞서서 아주 보편적인 심리마저도 일정치 못한 기준에 의해서 흔들린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한국은 표현에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인 사회다. 전체관람가의 대상이란 대한민국 국민 모두다. 그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전제란 영화 포스터에서 가능한 예술적 시도를 무시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기준이란 말이다. 그만큼 위원회 역시 보수적인 시선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당한 시각이 곧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각일 리도 없다. 영화 포스터상에서 동성애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 자체가 금기시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린 예술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유해성만을 판단하는 셈이다." 영등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유해성에 대한 올바른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관계자들 역시 영화 포스터의 표현 가치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모두가 납득하도록 추구해야 할 가치관은 존재한다. 그것이 영화 포스터에서도 허락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ELLE KOREA에 게재된 기사를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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