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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05일 06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05일 14시 12분 KST

부적격투성이 한국방송 사장 후보를 보며

연합뉴스

청와대는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에서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교과서를 의도하면서 "바른 역사교과서"라고 한 포장기술의 판박이다.

공정성은 공영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가치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방송권을 위임받은 조직이다. 나라의 주권자이자 방송의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송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삐뚤어진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사회적 공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건강한 공론장은 국민이 주인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반이다. 국민이 준 권력을 맡은 머슴은 아예 자기 권력인 줄 알고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들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감시견 역할이 바로 공영방송의 기본 책무다.

이번 KBS 사장 후보 선임의 심각성

공영방송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면 감시는커녕 앞장서서 국민을 눈속임하려 할 것이 뻔하다.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방송인으로서의 고대영 후보자에게서 정치적 독립의 철학과 신념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권력의 충실한 행동대 노릇을 한 편향적 이력만 보인다. 용산참사 관련 보도를 축소하게 하고 정부 입장을 두둔하는 보도를 지시하기도 했으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가 스폰을 받았다는 내용의 특종기사를 보도하지 못하게 막은 사례 등 숱하게 널려 있다. KBS기자협회가 제명을 할 움직임을 보이자 스스로 탈퇴를 하여 기자이기를 사실상 포기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 내부 구성원들의 신뢰는 필수적이다. 노조와 기자협회를 비롯한 KBS 직능협회들은 한목소리로 "사상 최악 부적격 후보자인 고대영씨의 사장 임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2009년 KBS기자협회 신임투표에서 93.5%의 불신임을 받았고, 2012년 양대노조 신임투표에서 84.4%의 불신임으로 보도본부장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내부 신뢰가 약하고 정당성이 모자란 권력일수록 힘에 의존해 구성원들을 억누르고 윽박지른다. 출세에 눈이 어두운 기회주의자들에게 완장을 채워주어 조직을 손아귀에 넣곤 한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제작부서에서 밀어내거나 심지어 쫒아내려 할 것이다. 창의적인 열정은 사라지고 간부의 눈치를 보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방송사를 지배하게 될 게 뻔하다.

국민의 방송권을 실현하도록 수탁한 주체는 사장 개인이 아니라 한국방송이라는 공영방송사다. 조직으로서 한국방송은 국민의 위임에 따른 방송권을 수행할 책임이 있다. 이것은 조직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책임감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소통과 합의, 상호존중을 통해 구성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직의 수장으로서 할 일이다.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서는 국민의 방송으로서 온전한 역할을 해낼 수가 없다. 휘두르는 인사 칼날과 통제에 위축되어 몸을 사릴지언정 자부심과 언론인 정신으로 제작과 보도를 하기는 어렵다.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력은 언제나 취약하고 무너지기 쉽다.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압력에 무기력할 가능성이 높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튼튼한 방화벽이 있어야 하며 이는 바로 내부 조직력에서 나온다. 그동안 불공정 논란이 있을 때마다 내부 견제장치가 그나마 최소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제작과 편성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다. 위계에 의한 통제는 보도와 프로그램의 제작 및 편성에 대한 경영진이나 권력의 개입 가능성을 높인다. 구성원들의 제작 자율성을 신장시켜서 외부적인 압력과 간섭을 배제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고후보자는 KBS 편성규약을 개정해 구성원들의 권한을 축소하겠다는 내용의 경영계획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성규약은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제작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적 장치다. 이를 무력화하고 경영진과 간부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정신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경영진을 통해 외부의 압력이 손쉽게 제작과 편성에 개입할 길을 닦아 주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를 되돌아봐야

그뿐 아니다. 공영방송은 국민의 가치와 정서, 현실인식을 방송이라는 형식에 담아내는 조직이다.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는 방송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후보자가 그동안 보여준 현실인식은 국민들과 동떨어져 있다. 이는 공영방송의 존재론적 가치를 뒤집는 것이다. 대기업으로부터의 골프 접대로 물의를 빚은 것도 그가 공영방송 사장은 고사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이라도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도덕성은 신뢰의 원천이고 신뢰받지 못하는 언론은 이미 그 구실을 하지 못한다. 흠결 많은 사장이 이끄는 방송의 보도와 프로그램에 대한 국민 신뢰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국민의 사랑을 받던 MBC가 왜 어떻게 국민의 지탄을 받는 방송으로 추락했는지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국가 기간방송인 KBS도 벼랑 끝에 서 있다. 공영방송을 권력의 홍보도구로 만드는 것은 정권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비판과 견제는 쓰되 권력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지만 나팔수는 당장에는 달콤하지만 마침내는 독약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