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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5일 05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5일 14시 12분 KST

개성공단, 자해의 경제학

연합뉴스

제재가 아니라, 자해다. 개성공단에서 봉제공장을 했던 김 사장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정부가 하루이틀이라도 먼저 공단을 닫는다고 알려줬으면 물건이라도 들고 나왔을 텐데, 빈손이다. 지원대책은 요란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13년 160일 동안 공단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겪었다. 똑같은 정부고 똑같은 대책이다. 돈을 빌려준다고 하지만, 사업을 못하면 갚을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개성공단의 124개 업체 중 섬유봉제 기업이 73개사다. 한국은 한때 세계 2위의 의류 수출 강국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인건비가 올라가고 그나마 인력을 구할 길이 없자 해외로 나갔다. 국내의 봉제공장들은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미얀마로 떠났다. 자리를 잡은 기업들도 있다. 그러나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금방 현지 기업들한테 따라잡혔다. 돌고 돌아 간 곳이 개성이다. 개성이 닫히면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김 사장이 개성에 두고 온 것은 단지 설비와 원자재와 완제품만은 아니다. 얼마나 애써 키운 기술자들인가? 김 사장은 조금 늦게 개성에 진출했다. 배정된 인력은 봉제공장에 다닌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옷이란 무엇인지부터 설명했다. 재봉틀에 처음 앉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라면 박스로 가위질을 연습했다. 그런데도 몇 달 만에 생산에 투입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만큼 손재주가 좋고 말이 통하고 학력 수준이 높았다.

물론 그동안 많이 싸웠다. 주문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갑자기 정치행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결근을 하지 않나, 무심코 뱉은 발언이 정치논쟁으로 비화되어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오해와 편견이 이해로 배려로 아주 천천히 달라졌다. 개성에서 만든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통일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개성공단의 장점은 인력의 안정성이다. 국내든 해외든 봉제공장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숙련공을 키우기 어렵다. 이 세상 어디에서 15만원의 월급으로 안정적인 숙련공을 고용할 수 있단 말인가? 5만4천명, 피땀으로 키운 개성의 숙련공들은 어떻게 될까? 2010년 5·24 조치 때 확인되었지만, 풍선효과가 재연될 것이다. 그때 남북 위탁가공을 끊자, 그만큼 북-중 위탁가공이 늘었다. 2010년 1억달러 수준의 북-중 위탁가공은 2014년 4억달러 수준으로 4배 증가했다. 우리 기업이 설비를 주고 기술을 가르쳤는데, 중국은 가만히 앉아서 숙련공을 얻었다.

만약에 개성공단의 인력을 신의주 근처로 이주시키고 중국전용 위탁가공단지를 만든다고 예상해 보자. 중국은 자신들의 원자재를 투입해서 생산하는 역외가공지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합의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그런 조항이 있다. 그래서 중국이 한국에 수출을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려 있으면 어떤 제재도 한계가 있다. 중국은 손해 볼 일을 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마찬가지다. 선진국에서 제재와 관련된 법안들이 왜 그렇게 복잡한지 아는가? 가능하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상대에 고통을 주기 위해서다. 도대체 자기 나라의 중소기업을 탄압하는 정부가 어디에 있는가?

의류산업의 전후방 업종에서 핵심적인 봉제 생산기지가 없어졌다. 개성의 봉제공장만 망하는 것이 아니다. 의류산업 전체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5천개의 협력업체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12만5천명만 일자리를 잃은 것이 아니다. 전방효과도 있고 후방효과도 있다. 김 사장의 희망만 사라졌을까? 개성공단을 바라봤던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희망도 사라졌다. 북방의 문이 닫히면 한국 경제의 성장도 멈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