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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2일 06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3일 14시 12분 KST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연합뉴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지금은 박근혜 이후 '누구'가 아니라, 박근혜 이후 '무엇'을 말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폐허고 탄식뿐이다. 집무를 하지 않는 대통령과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관료가 정부를 멈추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썩듯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유일하게 '부패'만 움직였다. 다행스럽게도 위대한 촛불의 힘으로 우리는 치유의 기회를 얻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단이 필요하다. 과연 박근혜 정부를 망친 주범은 무엇일까?

먼저 착각을 들 수 있다. 아버지의 시대가 저물었는지도 모르고, 딸은 아버지가 남긴 유산 위에서 살았다. 그중 핵심은 권력의 사유화다. 박근혜는 부패의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짐이 곧 국가'인 왕조 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공과 사를 착각하면 거대한 부패만 남는다. 시대착각은 처음 보는 풍경이 아니다. 바로 박정희 체제의 본질이다. 딸의 착각이 결국 박정희 체제의 청산 필요성을 드러냈다. '물려줄 것은 부끄러움 뿐'인 정부는 '딸의 4년'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18년'이었다.

언제나 부패와 무능은 동전의 양면이다. 오랫동안 부패세력은 무능을 감추기 위한 무기를 휘둘렀다. 그것은 '공안'이다. 공공의 안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들은 언제나 정권의 안보만을 지켰다. 공안세력은 간첩을 조작하고 야당을 종북으로 몰아, 부패와 무능을 감추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고, 애국을 앞세워 양민을 학살하고, 공안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탄압한 사람들이 역사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박근혜를 낳았다. 박근혜 정부의 한 축은 부패고, 다른 축은 공안이다. 왜 박근혜 정부의 요직을 공안검사들이 차지했을까? 너무 부패했고 감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색깔론으로 정권을 잡고, 모든 남북관계의 문을 닫은 공안세력은 다시 '겨울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했던 사람이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종북으로 몰았다. 고문을 지휘했던 사람이 다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슬픈 흉터'인 국가폭력을 다시 살려내고, 공권력을 동원해서 민주주의를 살해하고자 한 자들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깨운 것은 눈물이다. 말라버린 사막에 내리는 생명의 비처럼, 세월호의 '깊은 슬픔'이 성찰의 계기였다. '꼭 필요할 때 국가는 어디에 있느냐?'고 시민들이 물었다. 왜 박근혜 정부가 슬픔을 조롱하고 진실을 감추려는지 의아해했다. 왜 정부가 자식을 잃은 부모를 탄압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꼬리를 쫓아가다가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실체를 알았다. '세월호 7시간'이 모든 것을 드러냈다. 광화문 광장에 서면 눈물부터 흐른다. 눈물의 힘이 광장의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의 연대가 촛불의 힘이다. 우리는 깨달았다. 국가는 부패한 권력자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임을.

비틀거리던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살아났다. 박근혜 이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박근혜 이후 '누구'가 될 것이다. 시민들은 촛불의 '깊은 슬픔'을 공감하고, 민주주의를 다시 꽃피울 정치를 기대한다. 그래서 부패의 민낯을 드러내고 무능의 구조를 개혁하기를 원한다. '문제는 정치'다. 너무 많이 무너져서, 평범함으로 부족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아직 김기춘은 감옥에 가지 않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