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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7일 10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8일 14시 12분 KST

'XX녀' 제목 안 붙이면 기사 못 쓰나

hidesy via Getty Images

이야기를 하는 데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군대 내 병사 간 성폭행이 아주 잦아서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자. 피해 병사가 법정에서 증언하는 씬으로 설명할 수 있고, 아니면 강간 장면을 디테일하게 보여줄 수도 있다. 그 역할을 맡은 20대 초반 잘생긴 남자 배우의 쭉 뻗은 맨다리와 근육 잡힌 나체를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면서 선정적인 포즈로 힘없이 당하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을 수도 있고, 그 병사의 어머니가 말 없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장면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남자가 군대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고, 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여자가 피해자인 강간사건이면, 우리는 아주 빈번히 포르노스러운, 선정적인 구도로 아름다운 피해자의 반나체를 보게 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찡그린 얼굴, 혹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바닥 정도만 화면에 담길 터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해자 중심 서사에 너무 익숙해져서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취하는 여자들이 위협을 느낀다는 이슈가 떴다. 이 이야기 역시 여러가지로 보도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왜 대처체계가 미흡한지, 신고가 얼마나 늘었는지, 1인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그 중 여자 비율은 얼마나 되고, 신고했을 때 어떻게 처리하길래 아직도 저렇게 불안해 하는 사람이 많은지, 어떤 방범 제품이 잘 팔리는지 등등. 그러나 연합뉴스가 택한 방법은 여성의 피해자화다. 기사의 사진은 등을 보이는 여성의 사진이다. 당신은 가해자의 시선으로 여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혼사녀'라는 신조어까지 붙였다. 하여튼 **녀라고 안 붙이면 사내복지에, 인사고과에 영향이 가나 보다. 혼자 사는 여자, 자취하는 여자, 위험에 떠는 여자. 이 사건의 시작은 여자의 자취방이라는 타이틀로 선정적인 화보집을 팔려던 작가인데, 그 이야기는 사라지고 없다. 여성이 느끼는 위협을 꼴릿한 사진으로 소비하는 작가, 신조어 만들어내면서 또 소비하는 뉴스. 문제의식이나 해결을 위한 방안 이런 거 없이, 선정적인 서사나 여성의 약자화로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하나하나만 보면 크게 비판거리가 안 될 것 같지만, 그게 모자이크처럼 합해져서 치안은 좋다지만 여성 상대 강력 범죄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한국이 된다. 성범죄 기사는 자주 가해자의 입장으로 쓰여지고, 여자 피해자는 선정적으로 그려진다. 피해자가 고등학생이면 '당한 여고생'이란 식으로 나가고, 주위 남자들은 여자들보고 조심하라고 한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당한다고 말하고, 발랑 까진 여자들은 당해도 마땅하다 말한다. 성범죄가 거의 자연재해 수준으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여자는 무력하게 당하니까 최선의 방법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심하거나 남자에게 기대는 것이다 (남친이 데려다 주고, 자취방에는 남자 신발 남자 옷을 가져다 두고). 뉴스만이 아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에서도 여자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것이 클리셰 급이다. 로맨스로 미화한 억지 키스, 스토킹, 완력으로 제압하기 등등이 더욱 더 그런 인식을 부추긴다. 그리고 여자가 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예쁜 여자, 보호본능 불어일으키는 어리고 귀여운 여자가 되어 보호해줄 남자를 찾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대표님, 실장님이 와서 구해주고 (그런데 그런 남자가 또 강제 키스 스토킹한다는 거 하아) 실생활에서는 남사친, 남친, 아빠, 오빠가 와서 껄떡이는 남자들을 위협해야 한다. 그렇게 보호해줄 남자 찾기 자체가 미화된다. 드라마에선 당당하고 잘 나가는 여자가 갑자기 신변의 위협을 느껴 남주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20대 연예인은 가녀리고 힘없는 여고생 컨셉으로 화보를 찍는다. 쉴 새 없이 너는 무력해, 너는 약해, 너는 이렇게 당할 거야, 너는 남자의 보호가 필요해, 너는 여자니까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조심해야 해라는 사회의 결론이다.

이렇게 로타 등등의 로리타 컨셉 화보, 여 아이돌들의 애교, **녀라는 타이틀 뽑기, 선정적인 서사, 영화의 강간 장면, 사근사근함 요구,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충고가 다 하나로 뭉치면서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 압력이 된다. 화보 단 하나가 강간범을 만든다는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단면들이 가해자 처치나 범죄 대응보다는 여자는 도움 없이는 당하기 마련이니 예쁘게 조신하게 남자에게 잘 보여서 보호 받아라고 말하니까 문제이고, 화보 역시 그 수많은 조각 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강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여자는 강간당해서 안타깝고, 어쨌든 당했으니 여자로서 가치가 떨어지고, 어떤 여자는 얼굴이 무기인데 당했다니 떨떠름하게 아 네 그러세요 하는 식은 덤이다. 정말 너무나도 철저히 가해자 입장이라 소름이 돋을 정도다. 로타 화보를 보고 그저 예쁠 뿐인데 뭐가 잘못이냐 하는 인식이 바로 반이정이 예고 여학생을 앞에 두고 역겨운 상상을 하면서 그게 왜 잘못이냐, 여고생은 세계 어디나 섹스 심벌이다는 식의 헛소리로 나온다. 죽기 전에 여고생 한 번 납치해서 강간해 보고 죽겠다는 협박으로 발현된다. 너는 애교가 많아서 예뻐라는 말 한 마디에는 그런 악의가 없었을지라도, 저 따위 제목 뽑은 연합뉴스 기자 역시 가해자 입장에서 써서 안 그래도 안 좋은 보안 더 나쁘게 만들겠다는 각오는 없었더라도, 다 조금씩 도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대책은? 독자를 가해자 취급하지 않고,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기사가 달라진다. 여자를 무력하고 순진한 피해자로 안 보면 나아진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니까 가해자의 입장으로 기사를 쓸 필요가 없다. 괴물 같은 가해자는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는지, 이전의 가해자들과 공통점이 있는지, 피해자들의 사후 보호는 어떻게 되는지, 어떤 여자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했는지, 어떻게 하면 저런 가해자들이 모여서 농담이랍시고 떠드는 일도 저지할 수 있는지, 범죄 저지르면 인생 조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서 쓰면 된다. 일반화하지 말라며. 왜 뉴스 읽는 사람들을 가해자로 보고 쓰나.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