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0월 15일 13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5일 14시 12분 KST

TPP로 인해 동아시아가 떠안게 된 과제

지금처럼 동아시아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메가 FTA의 도미노는 이 지역이 '미국→중국'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세력전이와 '일본→중국'이라는 지역 차원의 세력전이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라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이들 중 한 나라의 FTA 체결은 나머지 나라의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바로 그 출발점이 한미FTA로, 한중FTA, 한중일 FTA, RCEP, TPP 그리고 TTIP로 이어지는 메가 FTA 도미노는 한미FTA가 체결되는 순간 족히 예견된 미래였다. 문제는 상호 협력과 연대의 기운이 아닌 견제와 대립의 산물로서 촉발된 메가 FTA 도미노에 내재된 불안정성이 언제 어떤 양상으로 표출되어 협력을 무력화시킬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A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타결된 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국내 대다수는 'TPP 불참이 한국에 미칠 파장'이라는 일국주의적 시각에 경도된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필자는, 아직 협정문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답을 하기에 이른 감이 있기는 마찬가지나,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즉 TPP로 인해 동아시아가 떠안게 된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메가 FTA 도미노'의 내재적 불안정성

미국 주도의 TPP 타결 이후 이에 대항하고자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얼마나 속도를 낼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필자는 중국이 RCEP을 주도한다는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는 한·중·일 삼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인도 등이 서로 주도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지라 TPP에 비해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한중일 FTA, 일-EU FTA, 미-EU FTA(TTIP) 등의 이른바 '메가 FTA' 경쟁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왜 이렇게 버거운 '메가 FTA 도미노' 게임에 휘말렸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지금처럼 동아시아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메가 FTA의 도미노는 이 지역이 '미국→중국'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세력전이와 '일본→중국'이라는 지역 차원의 세력전이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라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이들 중 한 나라의 FTA 체결은 나머지 나라의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바로 그 출발점이 한미FTA로, 한중FTA, 한중일 FTA, RCEP, TPP 그리고 TTIP로 이어지는 메가 FTA 도미노는 한미FTA가 체결되는 순간 족히 예견된 미래였다. 문제는 상호 협력과 연대의 기운이 아닌 견제와 대립의 산물로서 촉발된 메가 FTA 도미노에 내재된 불안정성이 언제 어떤 양상으로 표출되어 협력을 무력화시킬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동아시아'는 형해화 위기를 맞게 되었다. 대체 동아시아가 어디인가? 애초 동아시아 역내국이 주축이 되어 출범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는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도 모자라 미국, 러시아까지 합류하면서 더이상 EAS 아닌 모호한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동아시아가 중국의 자장 내에 갇히는 것을 우려한 미국에 의해 일찌감치 '열린 지역주의'라는 미명하에 인위적으로 구획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TPP 타결을 계기로 '동아시아 지역'과 대등한 반열에 올라섰다.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의 미래는?

기실 동아시아에는 지역구분의 모호성과 함께 그로부터 배태된 지역정체성의 모호성도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기술격차, 소득격차, 판이한 산업구조 및 경쟁력 수준, 상이한 정치 레짐, 근대적 유제(遺制)에 더해 냉전적 구질서의 잔존, 그 귀결로서의 외교안보적 갈등 등의 공통 현안을 안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남북 간에 대치 중인 한반도 또한 중요 공통 현안 중 하나다. 그래서 말인데, 동아시아의 형해화에 주요 변인이 된 TPP가 이 지역의 새 질서로 자리하게 된다면 동아시아 공통 현안도 유야무야 형해화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동아시아는 외환위기 재발방지를 목적으로 출발해 궁극적으로 아시아통화기금(AMF)를 지향하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다자화'(CMIM), 역내 자본시장을 육성해 역외로 유출되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역내 지역개발에 활용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지닌 '아시아 채권시장 이니셔티브'(ABMI) 등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는 귀중한 협력의 제도화 경험을 공유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이를 미국 주도의 세계금융질서에 대한 반기로 받아들이는 미국이 TPP를 앞세우고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에 나서면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CMIM의 양대 축인 일본과 중국이 대립각을 세우자 CMIM의 AMF로의 여정도 주춤거리고 있다. 미국에 질세라 중국이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이라는 지역을 뛰어넘는 글로벌 전략을 내놓자 ABMI를 향한 공동의 노력도 흐지부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장차 북한을 위시한 역내 낙후지역의 개발자금 조달이 곤경에 처하고, 개성공단 등 남북통합에 대비한 규범제정이 배제된 TPP 원산지규정이 역내 표준으로 고착돼도 우리와 무관한가?

실물경제에서는 한미FTA를 모델로 하는 TPP가 지식재산권 및 투자자 보호, 높은 수준의 서비스 시장 개방, 국유기업의투명성 제고를 넘어서는 시장규율을 요구한다. 한편 현 정부는 공공외교 확대,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린치핀, 중견국가로서의 역할 수행을 중요 외교목표로 내걸지 않았던가. 그런 한국이라면 응당 TPP가 현단계 동아시아에 조응하는 것인지, 'TPP 이후'(post-TPP) 동아시아에 불어올 메가 FTA의 회오리에서 배제된 개도국과의 관계를 어찌할 것인지, 메가 FTA를 다자주의로 복원시킬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문다. 답이 선뜻 보이지 않지만 일단 질문이라도 해놓자. 당장의 '먹고사니즘'과 무관한, 책상물림의 한가한 질문으로 들릴지 모르나, 그 너머를 내다보는 시야가 미래의 먹고사니즘과도 맞닿아 있다고 믿는 필자는 그래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려 한다. 동아시아에 TPP는 과연 무엇이냐고.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