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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4일 12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5일 14시 12분 KST

외발로 선 21세기 디아스포라,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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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동현(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은 참여연대,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경계를 넘어 등 평화단체들과 함께 내전으로 수십만이 죽고 1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과 1인 시위, 촛불집회에 상징물 설치 등으로 시리아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한 캠페인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함께 하고 있는 병역거부자 동현님이 그동안 캠페인에 참여한 소회를 보내주셨습니다.

"마지막 병원이 폭격을 당했어요. 내 가족, 친구들도 많이 죽었어요. 아이들......."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얼굴을 가린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세상의 모든 슬픔이 그의 등을 두드려서, 그때마다 그는 어깨를 들썩였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면부지 타인에게 고통의 너비를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일까. 그의 이마에는 'ALEPPO'가 생채기처럼 붉게 새겨져 있었다. 그때 내가 본 것은 고통의 희미한 표정이었다. 깊이를 가늠하기엔 턱없이 작은 단서였다. 타인의 고통에 닿지 못하는 내 존재의 나약함 때문에 나는 서둘러 울었다.

지난 12월 16일,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 시리아인을 비롯한 아랍인과 한국인이 모였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군과 함께 민간인을 향하여 무차별적인 폭격을 해온 러시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집회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모인 개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처음에는 서로 서먹했다. 피켓을 나눠 들고 멀거니 서 있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자유발언을 진행했다. 알레포를 폭격하는 러시아와, 난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규탄, 타국이 시리아에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성토가 주를 이루었다. 전쟁희생자들의 참상만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언론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도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시리아인도 있었다. 시리아를 그리워 할 때, 시리아를 자랑하고 싶을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전했다. 발언을 하다가 왈칵 눈물을 쏟던 시리아인을 생각하면 글을 쓰는 지금도 먹먹해진다. 집회가 끝난 후에는 러시아대사관 직원에게 성명서를 전달하였다.

20일에는 20개 평화‧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6년간 45만 명이 학살당하고 1천 200만 명이 국내외 난민이 된 시리아 상황을 알리고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등 이해당사국들의 군사적 개입과 무기 수출 중단을 촉구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이 전쟁 종식을 위해 대화에 나설 것과, 시리아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짤막한 퍼포먼스도 진행했다(온라인 행동 네트워크인 아바즈-Avvaz-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를 벤치마킹했다). 활동가 몇 명이 빨간 잉크가 묻은 하얀 천을 머리끝까지 덮고 땅에 누웠다. 전쟁에 희생된 시리아인들은 이보다 더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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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펼친 1인시위 사진. 미국, 러시아, 터키 등 현 시리아 상황에 책임이 있는 나라 대사관 앞에서도 동시에 1인시위를 진행했습니다.

23일에는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러시아, 미국,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프랑스 대사관 및 인천공항, 광화문 일대에서 동시다발 1인 시위를 펼쳤다. 나는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며 민간인을 폭격하는 미국대사관 앞을 맡았다. 경계가 워낙 삼엄하여 한참 떨어진 횡단보도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유동인구가 많아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대사관 이야기를 들어보니 1시간 동안 5명 지나간 데도 있다고 한다.

24일은 토요일이라 모두 광화문에 모였다. 14시부터 20시까지 6시간 동안 진행했기 때문에 기자회견 때처럼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을 수 없어 인형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낮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꽃을 던져두고 밤에는 촛불을 켰다. 가만히 서있다 보니 제법 추웠다. 맨손으로 피켓을 들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한 시민이 말없이 장갑을 손에 쥐여 주고 떠났다. 어떤 이는 따뜻한 캔커피와 청포도맛 사탕을 주고 갔다. 시민들이 들고 있던 촛불을 하나둘 놓고 가서 인형 주변이 환하게 밝아질 때는 속에서 무언가 치받아 목이 메기도 했다. 이따금 시민들이 조용히 묵념을 하면 나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피켓팅을 하면서 시민들과 교감하고 함께 연대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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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촛불집회에 시리아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해뒀는데, 촛불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였고, 촛불을 놓고 가거나 묵념을 하고 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맘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천 복판에 다리가 한쪽밖에 없는 새가 외발로 서있었다. 그 새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새들도 모두 외발이어서 굉장히 기이했다. 나중에 새를 잘 아는 지인에게 물으니 그 새들은 원래 외발이 아니라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적들로부터 다리를 공격당하는 확률을 줄이기 위해 한쪽 발을 가슴 털에 넣고 있는 거라고 한다. 시리아는 6년째 학살당하고 있다. 외발의 새들에게서 나는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위태하게 서있는 그들이 마음 놓고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날은 언제일까. 외발로 선 21세기 디아스포라, 그들의 이름은 시리아다. 세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에 우리는 연민의 감정을 넘어 우리의 특권이 제3세계를 착취한 결과는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시리아 평화를 위한 캠페인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계속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만들어간 시민의 힘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타인의 고통」에서 수전 손택이 한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