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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7월 01일 11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8월 31일 14시 12분 KST

신해철과 X세대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신해철의 낭만주의는 꽤 강렬하다. 그의 노랫말은 주로 '(꿈을) 포기하지 않겠어', '결코 철들지 않겠어', '세상과 싸워나가겠어... 블라블라' 정도로 요약되는데, 이 투쟁은 늘 (신화적으로 설정된) 여자가 지켜보는 중에 벌어진다. 그는 결코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세상과 대상을 진지하게 대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특히 여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중2병에 걸린 남자애'를 소환하게 된다. 그럼에도 흥미를 끄는 건,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랫말에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이 순진한 세계관이 은연중에 90년대 세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어서다. "A.D.D.A"를 들어보면 신해철은 사십대 중반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reboot myself

이 글은 음악웹진 [weiv]에도 실렸다. 1999년에 오픈한 음악웹진으로 여러 필자들이 국내외 싱글과 앨범을 소개하거나 음악 산업 및 경향에 대한 칼럼 등을 쓰고 있다.

신해철 - A.D.D.A | REBOOT MYSELF (2014)

6월 26일, 신해철의 새 앨범 [Reboot Myself Part 1]이 공개되었다. 넥스트(N.EX.T)의 [666 Trilogy Part I] 이후 6년 만이다. 앨범보다 먼저 공개된 싱글은 "A.D.D.A "로 '아따'라고 발음하는데 원 맨 아카펠라 형식으로 만들어진, 1천개 이상의 트랙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곡이라고 한다. 반응은 양가적이다. 호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나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올 초부터 뜬금없이 신해철의 초기 앨범들을 틈틈이 듣던 중이라 오랜만의 신곡이 낯설지도 않았다. 아무튼 내게 "A.D.D.A"는 꽤 흥미롭게 들린다. 장난스러운 발음의 소리'들'이 나열되는데, 사실은 이게 강박적으로 녹음과 재녹음을 수백 회 반복한 다음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만든 소리라는 걸 생각하게 되니 그렇다. 미국의 5인조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Pentatonix)도 이런 식으로 음악을 만드는데, 목소리만으로 각종 악기의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한다. "A.D.D.A"의 경우엔 신해철 혼자 이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특별할 것인데, 배경으로 깔리는 베이스 라인과 겹겹이 쌓이는 코러스가 가상악기처럼 복잡하고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 게 인상적이다. 이 강박적인 작업은 그가 이 앨범을 어떻게 대하는지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힌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장르적 차이나 음악적 발전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낭만적 세계관이라고 해도 좋을 감수성인 것 같다. 이 낭만성이야말로 신해철을 '중2병'스럽게 만드는 요소지만 동시에 그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특징이기도 하다. 솔로 2집에 수록된 "길 위에서"의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 언제나 내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혹은 "나에게 쓰는 편지"의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같은 가사. 넥스트의 "인형의 기사 part 2″나 "Dreamer", "The Ocean", "Questions" , "Here, I Stand For You" 등의 노래가 환기하는 바로 그 부끄럽고 오그라드는 정서는 신해철의 음악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현재에도 지속되는 요소다. "A.D.D.A"의 가사를 보자. "학교를 갔어도 졸업이, 업이 안 돼 / 군대를 갔어도 취직이 안돼 / 장가를 갔어도 글쎄 어째 애가 안 생겨 / 애아범이 돼도 철이 들질 않아 전혀." 이 뒤로 "그냥 그대로 그대로 그대로 대로 대로 대로 대로 / 이 똑같은 세상을 어떡하든 버티는 나 / I'm just what I am" 같은 가사가 쭉 이어진다. 어쩌면 이토록 변하지 않을까. 관습적인 규칙에 늘 도전 받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소년의 세계.

신해철과 서태지, 90년대의 소년들

한편 신해철의 낭만주의는 90년대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서태지와 비교할 만하다. 서태지가 '시대적 명령'에 가까운 화두를 던지며 보다 집단적인 방식으로 세대와 소통했다면, 신해철은 '대책없는 낭만주의'를 통해 더 개인적인 지점을 건드렸다고 본다. 노래의 화자에 있어서도 서태지가 주로 '우리'를 많이 썼다면 신해철은 거의 언제나 '나'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회와 제도에 집중해 시대 변화를 요구한 서태지와 달리 신해철은 꿈이나 사랑, 운명 같은 낭만적이고 형이상학적인데다 비현실적인 개념들을 노래했다. 개인주의와 소비주의의 결합으로 '90년대'를 정의할 수 있다면 신해철이야말로 소비의 시대에 탄생한 '낭만적 개인'을 대변한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음악적으로도 이런 서사와 분위기를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제시하려는 욕망을 보였고, "A.D.D.A"의 강박적인 접근 역시 스펙터클의 일종이다.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세대,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신해철의 낭만주의는 꽤 강렬하다. 그의 노랫말은 주로 '(꿈을) 포기하지 않겠어', '결코 철들지 않겠어', '세상과 싸워나가겠어... 블라블라' 정도로 요약되는데, 이 투쟁은 늘 (신화적으로 설정된) 여자가 지켜보는 중에 벌어진다. 그것이 온 힘을 다해 사랑을 고백하는 러브 송으로 전환되는 것도 특징일 것이다. 그는 결코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세상과 대상을 진지하게 대하지만, 그럼에도 그걸 (특히 여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중2병에 걸린 남자애'를 소환하게 된다. 그럼에도 흥미를 끄는 건,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랫말에 부끄러워짐과 동시에 이 순진한 세계관이 은연중에 90년대 세대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어서다. "A.D.D.A"를 들어보면 신해철은 사십대 중반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려고 애쓰고 있는 것 같다.

신해철이 1991년 발표한 2집 제목은 [Myself]였다. 새 앨범의 제목은 [Reboot Myself]다. 솔로 2집은 한국 최초로 미디를 사용해 만들어진 앨범이자 그가 전곡을 작사작곡하며 싱어/송라이터로 경력을 시작한 순간이다. 그 점에서 [Reboot Myself]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나는 1991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디라는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2014년에도 누구보다 먼저 아카펠라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하겠다는 선구자로서의 욕망/의지. 다른 하나는 그때의 그 마음을 새삼 환기하겠다는, 뭔가 중요한 일이 내게 처음 일어난 그 순간을 돌아보고 떠올리는 감각. 이런 정서는 일종의 각오 같은 것을 자극한다. 지금의 삶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이었나, 중년이 되면 보통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마흔살이 된 지금에야 은연중에 그의 노랫말처럼 살려고 애써왔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게 '실패'했다는 생각도 든다. '중2병'이라 무시하지 말고 이 낭만주의가 나와 겹치는 지점을, 90년대의 아이들과 조우하고 충돌하는 지점을 더 살펴봐야겠다. 요컨대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하아 맙소사.

넥스트 - Here, I Stand For You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