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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3일 10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4일 14시 12분 KST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에 대하여

나무위키

최근 한국 서브컬처계 및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무위키의 "성 평등주의"(Gender Equalism) 항목(이 항목은 현재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으로 개명되었다)의 조작문제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면모에서 한번쯤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나는 해당문서 및 아름드리 위키의 "이퀄리즘" 항목, 그리고 사태의 경과를 상세하게 추적하여 기술한 페미위키의 "젠더 이퀄리즘 날조 사건" 항목 등을 참고하되, 여기에 개인적인 관심사를 덧붙여 정리해보겠다.


'성 평등주의'는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치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했다.


(아마도 여성주의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진) 한 나무위키 이용자가 2016년 8월 초 "페미니즘보다 역차별 논란에서 좀 더 자유"롭다는 점에서 여성주의/페미니즘보다 좀 더 나은 "사상"인 성평등주의=젠더 이퀄리즘이 서구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이퀄리즘" 항목을 만들었다. 페미니즘이란 짜증나는 말을 대체할 개념이 필요하다는 생각 및 그 후보로 이퀄리즘을 거론하는 일은 DC 일부 갤러리를 포함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전부터 유통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몇몇 커뮤니티에 한정되는 대신 하나의 '가치중립적'인 지식처럼 받아들여지며 한국의 온라인 공론장 전반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키 사이트에 독자적인 항목으로 작성된 것은 처음이었다.

2016년 8월은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촉발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메갈리안 공격 및 이에 대한 "넷 페미니스트"들의 반론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여기에 대한 정의당 문예위의 넥슨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 및 정의당의 해당 논평 철회를 둘러싼 논쟁으로 말미암아 여성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고조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반메갈리아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던 나무위키의 해당문서는 여러 이용자의 참여 하에 급속도로 살이 붙기 시작한다. 8월 14일 r75판에서 최초 작성자가 덧붙인 문구는 이 문서의 성장이 당시의 메갈리아 및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2015년 이후 메갈리아를 비롯한 쉐미니스트, 페미나치 단체들이 페미니즘의 이름을 방패로 걸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행하는 극단적인 언행과 징병제등의 남성에 대한 성차별들에 반감을 가진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젠더 이퀄리즘이 페미니즘을 대체할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상으로 대두되었다."

11월 1일 r141판을 작성한 기여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첨가하면서 이 개념이 여성주의를 겨냥하고 있음을 명확히 한다: "평등이면 평등이지, 평등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더 이권을 주는 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 페미니즘에서 '평등'이라는 말이 '여성이권'과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점에 대한 경계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은 여성이 악압받는 약자이므로 남성을 차별해야 평등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기반이므로[sic]"(11월 7일 r145판 추가), "남성과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하는 성 평등주의와는 전혀 같다고 볼수 없다"(같은 날 r152판 추가--물론 여성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표준적인 학술적 논의를 조금이라도 접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주장에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성 평등주의"는 1월 24일 페미위키 측의 매우 구체적인 반론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할 때까지 약 반 년간 지속적으로 증식했으며, 위키 밖의 각 온라인 게시판, 인터넷 언론의 카드뉴스, 정의당 당원 게시판 및 당원 게시 현수막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치면서 여성주의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했다. 이후 페미위키측의 세세한 반론으로 인해 젠더 이퀄리즘이 문서 작성자들의 믿음과 달리 '학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쓰이는' 용어가 아니며 그러한 주장이 최초 작성자의 "날조"임이 드러나면서 이 문서는 크게 정정되어 현재의 "나무위키 성 평등주의 날조 사건"으로 개명되기에 이른다.


메갈리아 비판자들은 일베·메갈 양자와 달리 온건·합리적이며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수호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별다른 공신력 있는 자료도 없고, 자신들이 직접 근거로 내세운 엠마 왓슨의 연설에 "Gender Equalism"이 전혀 언급되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이러한 주장 혹은 망상이 반년 가까이 제멋대로 자라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관찰대상이다. 작성자들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문구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작업은 분명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여성주의적 편견들이 어떠한 주장 혹은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과정이 반메갈리아적 입장의 형성과정과 근본적으로 유사한 논리를 따른다는 것만 짚어보고 싶다. 특히 오유-나무위키의 일부 이용자 등을 포함한 메갈리아 비판자들은 메갈리아로부터 기원한 전례없는 여성주의적 발화들을--물론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 발화들이 모두 설득력 있었던 것은 아니다--마주하여 정상/비정상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즉 "메갈"은 사회의 정상적인 합리성을 벗어나 남성에 대한 혐오·증오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단지 여성주의적 수사를 휘두르는 "일베"일 뿐이며, 그에 대항하는 (오유를 중심으로 하는) 메갈리아 비판자들은 일베·메갈 양자와 달리 온건·합리적이며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수호하는 이들로 그려진다.

이 패턴은 "성 평등주의"의 성립과 유통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 구도에서 여성주의는 여성들만의 이권을 생각하고 남성을 차별하자는 주장, 기껏해야 과거 언젠가 무언가 유의미한 역할을 한 적이 있던, 충분히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입장으로 제시된다(실제로 남초 커뮤니티에 가면 여성주의를 광기나 "정신병"이라고 격하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이 사회의 기본적인 당위로 자리잡은 현대에 사실상 성평등을 구축해온 거의 유일한 전통인 여성주의를 직접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은 합리와 정상성을 자처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는 "성 평등주의"가 여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로 제시되어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상황을 ①한편으로 껄끄러운 여성주의(자)를 덜 합리적인 이들로 낙인찍어 몰아내면서도 ②동시에 이제 현실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든 과거의 남성우월주의로 퇴행하는 걸 피하면서 ③합리성·정상성과 남성의 권리를 함께 점유하고픈 한국 남성들의 욕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의 빠른 몰락과 새로운 규범으로서의 여성주의적 비판을 동시에 마주하는 젊은 한국인 남성들에게는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일베로 표상되는 야만적·비합리적인 남성우월주의자, 여성들과 어울리기 위해 시시콜콜한 매너와 교양을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 여성들에게 굴복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보이는 "페미니스트 남성", 그리고 양 극단 사이에서 현대적인 합리성을 갖추되 여성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목소리를 내는--정확히는 자신이 그렇다고 믿는--'정상적' 남성. "성 평등주의"라는 개념은 세 번째 길을 선택한 남성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다른 입장, 특히 여성주의자들을 공격할 수 있는 담론적 무기로 제련되었다. 이러한 무기는 여성주의가 남성들에게 전가하는 죄의식과 책임, 즉 여성혐오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그 질서를 구성하고, 동조하고, 혜택을 보고 있는 남성들 자신들이 현재의 상황을 반성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는 믿음을 깔끔하게 날려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우리 모두는 평등하고 또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남자도 그 평등한 권리란 걸 아무 죄책감 없이 누려봐도 되지 않는가! 물론 번쩍이는 듯 보였던 칼이 알고보니 마분지로 만든 가짜였다는 게 이 계획의 치명적인 결함이었지만 말이다.


이들이 말하는 '평등'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에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으며 단지 남성의 위상을 보전하고 여성주의를 비난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기만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히 한국사회를 보다 학적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단순히 망상과 사기, 날조의 결과물로만 결론짓고 넘어가는 대신 좀 더 유의미한 생각거리들을 끌어내고 싶다.

1) "젠더 이퀄리즘"이라는 개념 및 이에 준하는 입장이 영어권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물론 이것이 학적·일상적 용법으로 널리 채택되고 있다고 볼 근거는 현재로서는 없다). 구글 스칼라를 참고할 때 해당 용어가 등장한 최초의 사례는 2000년 8월 말, 남성잡지(A Man's Journal) <에브리맨>(Everyman, 이 잡지는 2011년 4월부터 온라인 블로그로 운영되고 있다)에 실린 "평등주의냐 노예상태냐? 남성들의 선택"(Equalism or Slavery? Men's choice)이란 글이다. 현재 프로퀘스트 로그인 없이는 매우 제한된 부분만 확인할 수 있는 이 글과 해당 잡지의 블로그 소개문은 공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위한 평등은 옳은 일이나 오늘날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만이 부당하게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정확히 "성 평등주의"를 신봉하는 남성들의 입장과 일치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 평등주의"가 해당 시점부터 일관성 있는 용례를 가진 개념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다.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검색가능한 "gender equalism"의 용례들을 뒤져볼 때 어느 정도 일관적인 용법이 등장하는 시점은 약 2013-14년도쯤까지 와서다. 그러나 그마저도 매우 제한된 사례만이 검색되는 걸 볼 때, 이 개념은 여전히 매우 한정된 집단 내에서만 쓰이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언론 듀크 크로니클에 한 학부생이 기고한 글에서 "남성 증오"(male-hating)적 용법으로 오염된 여성주의를 "성 평등주의"라는 말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별 소득은 없어보인다. 이후, 페미위키에서 정리해놓았듯 영문 위키피디아에 2016년 7월부터 12월 사이 egalitarianism과 equlism을 등치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삭제되었다.

2) 아마도 영어권 온라인 커뮤니티, 특히 남초 커뮤니티의 담론생성과정을 직접 살펴볼 때까지 제대로 된 역사적 서술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가설은 그려볼 수 있다. 전통적인 (우월한) 남성상과 가족중심적 삶의 복구를 추구하는 입장이든, 남성에게 '부당한' 차별과 비난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든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서 여성주의·여권신장을 비판하는 언어는 적어도 2000년 초반부터 마이너하게나마 존재해왔으나 딱히 체계적인 개념화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대 중반, 특히 2013-14년 정도를 거치면서 이러한 입장들을 대변하는 용어로 "성 평등주의"가 사용되는 빈도가 약간이지만 점차 늘어난다. 과거의 직접적인 반여성주의와 달리, 이때의 "성 평등주의"는 자신이 여성주의의 반대자가 아니라 보다 완전한 대체항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실제 이러한 담론의 용법을 살펴보면, 이들이 말하는 '평등'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불평등에는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으며 단지 남성의 위상을 보전하고 여성주의를 비난하기 위해서만 동원되는 기만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난 영어권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상황을 설명할 능력이 없지만, 이른바 게이머 게이트를 포함해 여성주의에 대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적대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성 평등주의" 혹은 유사한 언어 사용이 앞으로도 이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전통적인 권위의 상실과 성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적 역할 사이에서 정체성과 자존감에 위기감을 느끼는 한국인 남성들에게도 매력적일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한국인 남성들 및 남초 커뮤니티의 담론지형이 이러한 언어가 쉽게 유통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조작된 개념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유통될 수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지금과 같은 담론지형이 유지되는 한 이 사건은 앞으로도 모습을 바꾸어 반복될 것이다.

3) 이 사건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문서작성·기여자들 및 비판자들이 사용한 수사적 전략에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문서작성자들은 서구의 학계를 "성 평등주의"의 상상적 기원으로 삼으면서 이 단어에 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으며, 비판자들은 팩트의 축적을 통한 논리전개를 통해 응대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서구의 학계·시민사회에 강력한 지적인 권위를 부여해 왔다. 특히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이 '한국 남성'과 공격하는 양상을 관찰하면, 이들은 영어권 여성주의적 자료를 활용하여 여성혐오·성차별을 옹호/정당화하는 한국 남성들을 무력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지적권위"를 무기삼아 사용하는 수사적 전략을 채택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종 무시되는 사실이지만, 2010년대 한국 온라인 여성주의의 발흥은 미국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주의 담론이 폭증한 것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 역으로 특히 반여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이 합리성의 신봉자들이며 여성주의자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논자라는 구도를 설정한 뒤 (역시나 선별적으로 수집된) "팩트"에 기초한 논변을 통해 여성주의자들을 제압하고자 해왔다. 요컨대 "서구 선진 학술장"과 "팩트"는 각각 양자의 전략 중심에 있는 핵심개념이었다.


상이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편집전쟁에 돌입하는 전개는 두 언어의 충돌가능성을 제고한다.


이번 사건은 두 진영이 논쟁에서 서로의 수사적 전략을 차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반여성주의적 논자들은 서구 학술장이라는 권위를 (거짓되게나마)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했으며, 역으로 특히 페미위키의 이용자들은 강력한 팩트축적을 통해 "성 평등주의" 지지자들의 "선동과 날조"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일회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후에 여성주의와 "한국 남성"을 둘러싼 논쟁들이 지금보다 훨씬 복잡하게 변모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지금까지 비교적 남성중심적이었던 온라인 공간, 특히 위키 항목의 생성과 수정을 둘러싼 편집전쟁이 점차 확장될 경우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여성시대의 SLR클럽 침투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2015년 이전까지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서로 다른 관심사에 의해 형성되었고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복수의 커뮤니티들로 구성되었다. 메갈리아와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의 출현에서 진짜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미러링"이라는 개념을 동원해 자신들의 공격적인 발언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성혐오"라는 키워드를 통해 커뮤니티들 사이의 상호불간섭을 넘어 문제적인 발언과 문화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비판하는 걸 일상적인 행동양식으로 채택했고, 결과적으로 커뮤니티를 넘나드는 남성문화/여성문화 사이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갈리아의 붕괴 이후 온라인 여성주의자들의 결집력이 하락하고 이러한 충돌 혹은 접촉이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남초적 언어와 여초적 언어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대규모 SNS를 제외하고는) 다시금 별개의 문화로 분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이한 성향의 이용자들이 위키를 두고 편집전쟁에 돌입하는 전개는 국지적으로나마 두 언어의 충돌가능성을 제고한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들의 언어를, 그리고 새롭게 온라인 공간에 진입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어떻게 형성할지는 이후의 전개에 달려 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BeGra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