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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08일 13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08일 14시 12분 KST

한글날. 읽기 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의 詩作

여름방학 -초4 방학이 너무 짧아. 길었으면 좋겠어. 수영장에서 노는 시간은 너무 짧아. 길었으면 좋겠어.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 길어. 짧았으면 좋겠어.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특별히 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당연하게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다.

여름방학 -초4

방학이 너무 짧아. 길었으면 좋겠어.

수영장에서 노는 시간은 너무 짧아. 길었으면 좋겠어.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 길어. 짧았으면 좋겠어.


선생님 안경 -초4

선생님 안경 보라안경. 안경을 쓰면 공부를 더 시킨다.

무시무시한 보라색 안경. 싫다 싫다.

하지만 나는 똑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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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색깔 -초4

국어는 무슨색깔이니?

흰색이요.

왜?

책이 흰색이니까요.

수학은 무슨색깔이니?

노랑색이요.

왜?

책이 노랑색이니까요.

(중략)

그러면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이 모이면 무슨색깔이니?

검정색이요.

검정색은 싫어요.


시에는 아이들의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아이들은 왜 공부를 못하고 공부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다. 이미 한글을 줄줄 읽고 쓰는 친구들에 비해 가정에서 세심한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 정서적 문제가 있는 아이들, 발달이 조금 늦은 아이들은 특별히 지능의 문제가 없음에도 학교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주위의 아이들에게 주눅 들고 한명 한명을 챙겨주지 못하는 교실환경에서 아이들은 "학습부진"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함께걷는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이 부진한 곳부터 천천히 1:1로 지도해주는 선생님을 파견하고 있다. 위의 시는 이 선생님들의 지도로 학습부진 아이들이 쓴 시이다. 시에는 아이들의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 담겨있지만 그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한국사회에서 지능의 문제가 없음에도 학습부진이 되었다는 것은 대부분 어려운 가정환경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시에는 만나기 어려운 아빠, 할머니와 주로 생활하는 아이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라면-초4

할머니가 끓여주신

뽀그르르 라면

스프는 들어갔는데???????

맛이 왜 이러지

그래도 배고파서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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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초3

오랜만에 본 우리아빠

아빠하고 부르면

기분이 좋아.

해수욕장에 가면

기분이 시원 시원

아빠하고 걸으면

기분이 좋아

아 따뜻해


여름방학 -초4

(중략)

방학이 되면

엄마는 태국에 가신다.

동생도 함께 간다.

나는 자유다. 그리고 완전한 방학이다.

내가 원하는 방학. 완전한 방학


학습부진 아이들이 한땀 한땀 눌러쓴 동시를 낭송하고 시상하는 동시대회가 10월 9일 한글날 서울 포스코 P&S 타워 이벤트홀에서 열린다. 시작(詩作)의 기법이나 표현의 기술보다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始作)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http://walkingwithus.tistory.com/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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