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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30일 07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30일 14시 12분 KST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직면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성공이 아니라)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능 있는 한 작가도, 촉망받는 어느 연극인도 굶어죽지 않았던가. 모두가 알게 되는 성공자의 자리에 올라서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위 10%는 되어야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상위 1%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모든 영역이 승자독식구조인지라 대다수, 특히 청년들이 생존 자체를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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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기를, 노력은 재능을 이긴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널리 보편화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자기계발(self-help) 이데올로기를 통해 우리 안에 내면화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것은 우리하기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진학이나 취업 등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결국엔 우리 자신에 탓을 돌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거라면서 말이다.

노력은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노력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 이러한 단언은 위에서 지적한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결과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헛된 희망은 냉정한 현실에의 직면을 가로막는 정신적 진통제에 불과하다. 애초에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풀려나온 마지막 저주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누군가가 어떤 분야를 잘 못한다는 것은 사실상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분야에 재능이 없다거나 혹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자.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야 열정을 다해 오랫동안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의 몰입 체험에 들어갈 정도로 지속적인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재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하버드의 교육학자인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다중지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지능(재능)은 언어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공간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음악 지능, 개인 간 지능, 개인 내 지능, 자연주의적 지능, 실존 지능 등 아홉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분류는 해석과 평가를 요하는 사회과학적 모델일 따름이지만, 우리의 논의에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훌륭한 문인은 높은 언어 지능에 기초하여 수많은 습작을 거친 것이고, 훌륭한 무도가는 높은 신체-운동적 지능에 기초하여 끝없는 수련을 밟은 것이다. 말한 바와 같이 재능 없이 그 습작과 수련을 따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재능이 따라주지 않아도 독한 마음을 먹고 용케 그 분량을 채웠다 치더라도, 그 결과는 동일하지 않다. 재능의 유무에 따라 그 노력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첨언: 여기에서 재능이라는 단어로 논의되는 범위에는 후천적 교육 환경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하워드 가드너 또한 영재 육성 논의에 가정환경을 포함시킨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교육학적 환경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부모 밑에서 양육 받는 것이다(관심있는 분은 <비범성의 발견>(해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교육학적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므로 두루뭉술한 처리에 대해 양해를 바란다.)

성공은 재능과 노력과 운의 교집합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쟁은 재능 있는 자들 사이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일정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성실한 노력을 행할 때에야 진정한 의미에서 콜로세움에 입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들어가고 싶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 출전을 생각해보라. 해당 분야에 속한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메달 획득의 기회가 주어진다. 낭중지추라고 하지 않던가. 남들이 알아주어야 재능인 것이다.

하지만 각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성공하는 것은 재능에 노력을 더한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최종적인 결과에는 노력만큼이나 혹은 노력 이상으로 운이 작용한다. 수능 시험 결과를 떠올려 보시라. 그날의 컨디션에 좌우되는 작은 점수차로 학교 레벨이 결정된다. 하지만 재능 위에 노력을 더하지 않으면,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순전히 찍기 만으로 수능 고득점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재능과 노력은 기본이다.

따라서 성공은 재능과 노력과 운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일단 노력해야 재능을 꽃피운다(굳이 말하자면, 특정 분야에 대한 지속적 노력도 재능의 일부다). 더욱이 운이 따라야 성공한다. 그러니 재능이 있다고 하여 타인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노력을 못 한다고 자신을 자책할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 하고 싶은 영역보다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아래에 언급하려 하는 것은 위의 논의에서 조금 비껴가는 것이기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한 가지 직면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성공이 아니라)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능 있는 한 작가도, 촉망받는 어느 연극인도 굶어죽지 않았던가. 모두가 알게 되는 성공자의 자리에 올라서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위 10%는 되어야 기본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상위 1%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모든 영역이 승자독식구조인지라 대다수, 특히 청년들이 생존 자체를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혼이라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는 고백이 나오는 이유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운과 노력은 성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실정이다. 이제는 재능과 노력만으로 개천을 뚫고 용이 되어 승천하기가 어렵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장승수 변호사가 마지막 개룡(개천에서는 나는 용)이라고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개천에 방탄유리 천장이 덮인 상황에서 개인적인 해법(노력이나 재능)으로 풀어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가 일차적으로 구조적인 것이기에(개인적 측면도 중요하나 이차적이다) 해법도 먼저는 구조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구조적으로 갑질하는 사회 속에서 을들, 특히 청년들이 연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기 재능에 기반하여 성실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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