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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15일 07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15일 14시 12분 KST

열정 강박

과연 열정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업무에 직면해서 열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열정을 강요당하고 있지 않은가? 의미상 스스로 우러나와야 맞을 텐데 왜 열정을 강요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열정 없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전지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지금 이 세상은 양극화가 고착되어버린 승자독식사회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노동과 대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

연합뉴스

오늘날 청년은 열정과 가능성을 대표한다. 세상은 청년에게 말한다. 열정으로 살라고, 너는 가능성이니까. 이는 물론 정당하고 아름다운 말씀이다. 청년 세대가 열정(에너지)과 가능성이 넘치는 미완의 대기(大器)라는데, 그 누가 반박하겠는가? 사실 청년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세상은 청년에게 당부한다. 열정 없이 성공할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실은 열정 없이는 제대로 자신을 어필할 수조차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열정은 취업의 조건이나 다름없다. 면접에서 보여주어야 할 것은 스펙과 스토리에 드러나는 열정이다.

열정은 청년 세대 고유의 가능성을 발현하기 위한 마법의 열쇠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그야말로 자기계발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사실 열정은 모든 세대에게 요청되는 기본 덕성 가운데 하나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도처에서 열정을 찬양한다.

열정 강박과 승자독식사회

그런데 여기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열정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업무에 직면해서 열정을 자아낼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인간으로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지도자를 진심으로 존경하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모두 열정을 강요당하고 있지 않은가? 의미상 스스로 우러나와야 맞을 텐데 왜 열정을 강요하는 것일까?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열정 없이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전지로 사용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지금 이 세상은 양극화가 고착되어버린 승자독식사회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노동과 대가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한다. 오죽하면 스위스의 경우에는 CEO의 연봉을 최저임금의 12배 이내로 제한했겠는가? 모든 분야에서 최상위 계층이 수익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흔히 영화판이나 예능계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다른 영역들도 다를 바가 없다. 가령 미술관의 꽃이라는 학예사(curator)나 출판사의 편집자, 대학교의 시간강사 등은 어떤가? 무한 열정을 요구하는 다단계 종사자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 하랴. 모두가 청년의 열정을 긁어간다.

열정을 자아내지 말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이상 우리 청년들의 소중한 자산인 열정을 싸구려 취급받으며 착취당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자의 불쏘시개로 제공하지 말라.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노동과 대우 사이에 간격이 크다면 재고(再考)하라. 함부로 뛰어들지 말라.

이미 뛰어들었는데 대우가 형편없고, 업무가 과도하면? 불평하고, 항의하라. 자신의 권리를 찾으시라.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괜찮다고? 그러면 그 업계에 뛰어들 다른 청년들은 어쩌라고? 이타적으로 그들의 형편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고 일갈하였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열정을 노래하는 세이렌 자매들에게 미혹당해 무한경쟁의 바다 속 어딘가에서 사체로 발견될 것이다. 용케 바다에 떨어지지 않고 버텨도 갤리선의 노예가 될 따름이다.

열정을 강요하지 말라

열정은 훈련으로 인해 성숙되는 덕성이 아니라, 특정한 자극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지도자가 존경할 만하다면 알아서 존경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열정을 낼만한 환경이면, 알아서 신명나게 일하게 마련이다. 청년들에게 정상적인 급여와 안정된 고용 환경을 마련해주면 된다.

청년에게 열정으로 약을 팔지 마라. 그냥 칭찬만 하면 고래가 춤추겠는가? 칭찬은 옵션이다. 먹이를 제대로 줘야 고래도 춤춘다. 허나 요새 청년들의 형편은 고래보다 못 하다. 제대로 된 먹이는 고사하고 그냥 채찍만 휘두르는 경우도 적잖다. 그걸 묵묵히 감수한다면 내일은 없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요새 젊은 것들이 힘든 걸 모른다며 어려운 경험 좀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분들이 계신다. 글쎄 부디 댁들의 자녀부터 한 십년 쯤 그렇게 굴리고 나서 그런 말씀하시길 바란다. 다른 청년들도 당신의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비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