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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4일 10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4일 14시 12분 KST

폭탄으로 극단주의자를 죽일 수는 있어도 극단주의를 죽일 수는 없다

ASSOCIATED PRESS

미래의 공격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다음 세대들의 미래가 정해질 것이다.

파리, 중동, 말리의 최근 테러에 대한 우리의 충격이 어리석은 복수의 요구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했다. '폭격하고 끝내자. 적들을 없애면 다 잘 될 것이다.' 이런 유혹적인 목소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는 없다. IS는 무찔러야 하지만, 오늘 IS를 무찔렀는데 5년후에 다른 IS가 튀어나온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테러리즘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진정 원한다면, 이 현상이 우리 자신의 행동으로 빚어진 세계 지정학적 지형과 무관한 별개의 존재인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우리는 IS를 무찌르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평화가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공격을 한 것은 IS이지만, IS는 극단주의 철학과 해외 지원에 의해 태어났다. 우리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봐야 한다.

이슬람 국가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그런 이름을 쓸 자격이 없다. 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동영상에서 하는 행동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인류 전체를 죽이는 거나 다름없다는 코란의 경고(5:33)와 전적으로 배치된다. 코란은 무슬림들에게 다른 모든 신앙을 지난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라고, '공평하고 친절하게'(60:9-10) 살라고 가르친다. 불교 극단주의가 부처 때문이 아니고, 기독교 극단주의가 예수 때문이 아니고, 무신론 극단주의가 무신론 철학 때문이 아니듯, 무슬림 극단 주의는 선지자 마호메트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극단주의가 어떤 이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든 간에, 극단주의는 다수의 권리를 짓밟겠다는 소수의 의지를 대변한다. 극단주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혐오스러운데, 이는 즉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만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IS가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다. 서방 정부들의 근시안적 행동이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의 극적인 득세를 도왔다.

uk syria

첫째, 기회를 제공했다. 서방의 이라크와 리비아 개입은 널리 규탄 받았다. 서방 개입에 의해 망가진 이 두 나라에서 IS가 득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의 머릿속에서, 그러한 침공의 재정적, 지정학적 결실은 그 지역 사람들의 목숨보다 훨씬 더 귀중했던 것 같다. 수백만 명이 죽고 트라우마를 입은 뒤 생긴 권력의 진공 상태가 생겼다. 영토를 넓히고 싶었던 IS에겐 손쉬운 먹이였고, 지역 민간인들은 이중의 부당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서방은 실제로 IS를 지원했다.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누군지도 모를 '온건 반군'에게 무기, 자금, 훈련을 제공했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의 동지들은 버튼만 누르면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드론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공했던 무기와 훈련이 이제 우리에게 테러로 돌아오고 있다. 이게 정당하거나 이성적인 정책이었을까?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중동의 인권 침해를 줄이는 것이었다면, 왜 우리는 다른 인권 침해자들에게 무기와 돈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는가? 우리가 진정 중동의 평화를 원했다면 우리는 정부 전복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 무슬림 지도자가 최근 영국 국회 의원들에게 말했듯, 중동 정부들과 싸울 게 아니라 협력을 했어야 했다. 지역의 다리를 태울 게 아니라 새로 지었어야 했다. 중동에 존재하는 인권 침해를 스스로 줄인다는 조건 하에 중동의 극단주의를 제거하는 것을 도왔어야 했다. 권력이 아닌 평화를 추구하는 정책을 중동에서 협력 하에 추진했다면 극단주의와 인권 침해 모두 줄어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적 경계 너머에 있는 인간들의 삶을 냉담히 무시하는 것은 극단주의가 자라날 이념적 먹이가 된다. 타락한 성직자는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들이 체계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을 가리켜 이슬람의 심장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날조한 '성전'에 참전하라는 요구는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 대의, 방향, 그리고(이게 중요한데) 급여를 제공한다. 우리의 부당함은 부지불식간에 극단주의자들에게 훌륭한 핑계를 제공했다.

uk syria

그들의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IS가 현재 존재하며 저지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한 지혜와 선견지명을 가지고 그들을 무찔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사적 반응이 정치계와 매체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극단주의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군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더 투입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를 반영하지 않은 생각이다. 복수에 의한 공습이 IS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지만, 그 승리는 다음 극단주의 집단이 생기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될 것이다. 폭탄과 총알이 극단주의자들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극단주의를 죽이지는 못한다. 그런 무지의 대가는 우리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된다. 우리가 최근 겪은 것과 같은 테러를 저지하고 싶다면,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극단주의의 뿌리를 분석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불공평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듯, 우리 자신도 불공평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슬람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극단주의자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적 접근의 뿌리 깊은 행동을 바꾸려는 결심이 없다면 극단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K에 게재된 블로그 글 'Bombs May Kill Extremists, but They Will Not Kill Extremism'(영어)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이 글은 벨파스트 텔레그라프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