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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3일 11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2일 14시 12분 KST

재즈는 저녁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이 아니다

*이 글은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델로니어스 몽크의 아들이자 세계적인 재즈 드러머, 작곡가, 음악 교육가인 델로니어스 스피어 몽크(T.S. Monk)가 허핑턴포스트US에 기고한 Jazz Was Not Meant for the Dinner Table을 번역한 뒤 한국 독자들에게 맞게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학교'를 가면서 재밌는 일이 생겼고 '저녁 식사'는 매우 이상하게 변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래 설명하겠다.

내가 태어난 1949년 즈음엔 재즈를 진지한 지적 유희로 여기는 음악 학교는 거의 없었다. 사실 대놓고 비판하는 클래식 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흑인 음악인 재즈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즐기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마이클 에릭 다이슨 박사,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마야 안젤로,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 그리고 물론 오바마 대통령이 좋은 예다. 또 과학, 경제, 테크놀로지,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흑인들의 활동이 돋보이는 시대가 됐다. 흑인들의 지적 성취와 혁신은 이제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난 재즈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재즈가 약 100년 전에 처음 소개됐을 때 클래식 음악의 명사들은 이 새로운 음악 장르를 대단한 지적 유희라고 인정했다. 거기까지는 좋은 시작이었다. 그런데 정작 새로운 장르를 개발한 흑인 예술가들을 배제한 1950년대의 '음악 학교'들은 재즈를 고품격의 어려운 음악으로 좁게 정의하는데 주력했다. 재즈 교육 차원에서 크나큰 손해였고 그 결과는 그저 그런 재즈 음악가 배출이었다.

따라서 재즈는 큰 타격을 입었고 요즘에야 조금 바뀌고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에 학교 차원의 문제는 '저녁 식사'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녁 식사 문제가 뭐냐고? 백인 식당 주인들은 재즈를 할렘 밖으로 끄집어내어 저녁 식사 시간에 연주하는 감상용 음악으로 활용함으로써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재즈 음악의 본질 면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야기했다.

재즈는 저녁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으로 탄생됐던 것이 아니다. 사실 콘서트 무대에도 안 어울리는 음악이다. 재즈는 원래 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흑인들은 재즈에 맞추어 춤췄다. 어떤 종류의 재즈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재즈는 라디오를 통해 늘 청취할 수 있었고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그런데 TV 시대가 열리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TV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 화면에 잘 묘사하느냐가 중요한 매체이다. 당시에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재즈를 (재즈에 필연적으로 따라와야 마땅한) '춤'과 단절시키면서, 재즈의 엔터테인먼트 가치가 도태됐다.

우선 흑인들이 첫 희생자였다. 재즈에 맞추어 춤을 못 춘다면 다른 음악을 찾겠다는 태도로 우리는 로큰롤과 R&B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듀크 엘링턴, 더 도시 브러더스, 루이 암스트롱, 캡 캘러웨이, 베니 굿맨, 엘라 피츠제럴드는 다 연예인이었다. 무대를 장악했으며 음악에 자기의 모습을 부여했다. 그들의 음악은 엔터테인먼트이면서도 지적으로 흥미로웠다. 그런데 재즈가 공부해서 들어야 하는 학문적 음악으로 변하고 레스토랑 저녁 식사의 일부로 전락하면서 정말이지 재미없는 음악이 되어버렸다. 특히 여기 시간에 발 뻗고 편하게 음악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재즈는 적합하지 않은 음악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우리가 얼굴에 색을 칠하고 노래하던 그런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재즈에는 스타일이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의 재즈는 멋지지 않다는 것이다. 재즈 뮤지션들이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이상으로 재즈를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거다. 우리의 표현력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겸손한지, 요즘 사람들은 아예 재즈로부터 관심을 잃었다.

모든 음악 장르는 관중을 흥분케 하는 나름의 특별한 뭔가가 있다. 그런데 모든 연예인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도구도 있다. 조명과 최고의 오디오가 그 일부다. 그런데 사실 가장 중요한 도구는 음악가 자신의 카리스마다. 매우 충실하게 음악적 내실을 다져온 우리 재즈 음악가들은 이젠 다시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만 한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들이 이용하는 재료를 우리가 조금만 이용해도 사람들은 재즈를 흥미로운 음악으로 인정하고 다시 찾기 시작할 거다. 수많은 사람이 재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 아버지 델로니어스 몽크, 루이 암스트롱, 엘라 피츠제럴드, 마일스 데이비스, 데이브 브루벡, 존 콜트레인, 버디 리치 등 수많은 재즈 음악가는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을 거다. 또 '국제 재즈 데이 콘서트'가 2013년에 1,200만 명의 사람들에게, 또 2014년에는 2,300만 명의 사람들에게 스트리밍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을 거다. 재즈란 장르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런 행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생각해보라. 우리 재즈 뮤지션들은 우리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재즈 음악가, 홍보사, 재즈 클럽 운영자, 청취자, 그리고 모든 재즈의 친구들에게 재즈라는 장르를 다시 즐겁게 만들고, 더 흥미진진한 음악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거대하게 꿈꾸자. 그래야 큰 관심이 모이고 돈도 자연스레 꼬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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