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3월 04일 07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3일 14시 12분 KST

'게이 절친'은 죽어야 한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게이 블로거인 작가 Tré Easton의 The Gay Best Friend Must Die를 번역, 가공한 글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주로 그렇듯이 이번 글로도 욕 먹을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이 시대 미국 동성애자에겐 많은 장점이 있다. '기본 권리와 헌법이 부여하는 보호'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는 있지만, 게이 커뮤니티는 -적어도 남자 게이 커뮤니티에 관한 내 경험으론- 전례없는 사회적 수용으로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

나는 지금 결혼 평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게이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견해는 빠르게 전환이 됐다. 우린 거의 공존의 시대에 가까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남은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스캐롤라이나 주, 조지아 주, 아칸소 주. 정신 차려!- 전체적으로는 정말이지 대단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사실 별로 유감스럽지 않지만) 진실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즉, 모든 이성애자들이 꼭 하나씩 있다고 자랑하는 게이 절친(GBF: GAY BEST FRIEND)의 빠르고 깔끔하고 명백한 죽음을 선포하는 일 말이다.

게이 절친은 '총체적인 시대정신'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시트콤 '윌 앤 그레이스'의 주인공인 독특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윌 트루먼, 너무도 잘 생긴 드라마 '걸스'의 엘라이자, '글리'의 까불이 커트,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캐리 브래드쇼의 친구 스탠퍼드 블래치는 게이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견해를 완전히 바꿨다.

이젠 새로운 TV 드라마나 시트콤에 게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부차적인 줄거리가 꼭 포함된다는 사실, 그렇지 않을 때 비난이 쏟아진다는 사실 등을 고려해보시라. 적어도 대중문화에 있어서 게이를 향한 시선에 얼마나 큰 발전이 있었는지 증명된다. TV 프로그램에 게이가 등장하지 않아 다양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 시대에 와서나 가능해진 일이다. TV에 LGBTQ 커뮤니티가 배제될 때 사람들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동성애자들의 새로운 입지를 잘 말해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애자들이 LGBTQ 커뮤니티의 수많은 멋지고 아름다운 성품을 '게이 절친'이라는 협소한 용어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재치, 발랄한 성격, 음악에 대한 감각 등 수많은 장점을 지닌 게이 남자들을 단순한 형용사로 국한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식으로만 게이 남자를 인지한다면 진짜 인간으로서 전체적인 그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즉, 아기를 방 한구석에 몰아넣는 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짜증이 나는 것은 커밍아웃한 게이 남자 친구를 '내 게이(My Gay)'라고 부르는 일이다. 사회적 규범 중에 하나는 누구의 소유물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것이지만, 이번만은 그런 규범을 무시하겠다. 게이 친구 아니라 어느 누구를 '나의 뭐'라고 부르는 행동은 정말로 유치하다. 그럼 다음은 이런 말이 나올까? 내 이성애자? 내 흑인? 내 신?

'게이 절친'이라는 개념은 그 게이 친구가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언어 실수라고 그냥 넘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누가 나를 성적인 테두리 속에 가둔 채 인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동성애자라는 내 성적 성향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에 내 자신을 맞추는 것도 거부한다.

당신 여자들이 우리 게이 남자들에게 물어보는 걸 우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아가씨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왜 당신에게 문자를 안 보내는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알겠냐고(내가 좋아하는 놈의 문자가 왜 안 오는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무슨 치마가 잘 어울릴지에 대한 내 의견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삼가해라(믈론 드레스가 진짜로 끔찍하다면 한마디 거들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당신이 필라테스 강의를 시작했든 안 했든 관심 없다(고문은 불법 아닌가?). 그리고 신이 존재하고 사랑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제발, 정말이지 제발, 날 무슨 명예 여자로 취급하지 말아달라. 24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나에게 확실한 것이라곤, 내 성기가 내 몸에 부착되어 있기를 바란다는 것과, 난 그게 좋다는 사실이다.

우린 소통의 차원에서 새로운 시대에 갓 입문했다. 사회도덕적인 차원에서 좀 더 정의롭고 더 계몽되고 모두가 더 연결된 세상이 우리 앞에 닥쳐있다. '게이 절친' 같은 명칭은 이성애가 우선인 무지한 과거에 남겨둘 단어다. 우리가 함께 개척할 앞날엔 적합하지 않다. 물론 나쁜 뜻에서 그런 말이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런 말이 무해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안다. 또 일부는 오히려 좋은 의도에서 그런 명칭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시작됐다고 해서 이 단어가 불쾌한 사람들이 그걸 참아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내가 아이들을 입양하는 날이 온다면 두 명의 게이 아빠랑 사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두 아버지랑 사는 아이들이 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정말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그와 '게이 결혼'을 했다고 불리지 않기를 바란다. 단순히 '결혼'한 것으로 인정되기 바란다. 또 자존감이 출중하고 스타일도 멋지며 능력도 풍부한 게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를 '게이 대통령'이라고 구별하지 않기를 바란다. 단순히 대통령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의 '게이 절친'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저 '친구'가 되고 싶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그 단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많은 것의 의미는 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라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동지들이여, 때가 됐다. '절친'을 생명 유지 장치에서 분리하시라. 우리를 가수 셰어(게이 아이콘으로 유명한 미국 뮤지션)와도 분리해달라. 무지개 장식물도 잊어달라. '절친'은 석양과 함께 사라져야 한다. 이제까지 그 임무를 출중하게 해냈지만 그 이상의 역할은 무리다. 아마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함께 노력한다면 이 전환기를 잘 감당할 수 있을 거다. 혹시 잘 안 된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 인류 모두는 지구 온난화로 어차피 제거될 테니까 말이다.

이상 강의 끝.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