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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1일 12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1일 14시 12분 KST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 어느 HIV/AIDS 감염인의 이야기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살면서 당신 주위에 아무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없었다면, 그건 정말로 그런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고. 없었을 리가 없는 그들이 자기 얘기를 못했던 것뿐이고, 나아가 자기 얘기를 '말하기 어려운' 태도를 '당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이 말은 다름 아닌 '동성애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뭣도 모르는 이성애자들 주위에 동성애자가 없었을 리가 없겠지요. 다만 도저히 입을 떼기 어려운 어떤 아우라 앞에 자신을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일 겁니다.

그리고 '동성애자' 안으로 범위를 좁혀봤을 때, 이런 말이 똑같이 적용될 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HIV/AIDS 감염인들입니다. 동성애자 커뮤니티 주위에 자신이 감염인임을 밝혀오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주위에 그런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은, 정말로 감염인들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뿐더러, 그건 존재하지 않을 리 없는 그들이 도저히 자신을 알려올 수 없도록 만든 '동성애자' 스스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마치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자신을 알리기 힘들었던 그들의 기억 그대로 말이지요.

"1992-3년도지. (중략) '형 술집 오지 마라.' '왜?' 그러니까 쟤가 간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는 거야. 길녀 얘기했잖아 내가. 길녀가 왔다 가니까 오호, 소독약을 뿌리고 난리를 치더라고. '왜 그러는데?' 그랬더니 '저년이 에이즈 환자야.' 그러는 거야. 그러면서 걔 먹는 거 다 버리고 유한락스로 닦고 난리를 치는 거야. 그런데 걔가 뭐라고 하냐면 '형이 왔다가도 저래.' 그러는 거야. 그걸 내가 봤잖아. 내가 그때부터 국내 술집을 안 가는 거지."

- 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 <8·90년대 남성 동성애자 게토·커뮤니티 보고서>, 2013, 45-46쪽.


동성애와 HIV/AIDS

AIDS가 돌기 시작하던 1980년대 말엽에서 1990년대 초반,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감염인에 대한 대접은 게이 커뮤니티 밖의 대접만큼이나 가혹했던 모양입니다. AIDS란 동성애의 천형과 함께 속절없이 딸려오는 병이자, 게이의 인생 막바지에 여지없이 자리하고 있을 운명이고, 수많은 이들과 몸을 섞은 배덕으로 인해 자연히 따라붙을 응보였던 모양입니다. HIV/AIDS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져있지 않던 시절의 게이 선배들이, 성정체성의 공포와 함께 그것과 소문처럼 연루돼있다는 병증의 공포까지 함께 짊어지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래서 초창기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이 AIDS란 질병을 동성애라는 성정체성과 떼놓으려는 노력을 진행했습니다. AIDS가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도 감염될 수 있고, 문제는 동성애나 항문섹스가 아니라 콘돔을 쓰지 않고 체액이 오가는 섹스 관습 때문임을 줄기차게 외치고 홍보했습니다. 동성애자에게 AIDS는 결코 필연이 될 수 없으며, 저런 질병을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게이로서의 자신을 승인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전기임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말씀대로, 이론상 동성애와 AIDS는 전혀 다른 층위의 개념임이 확실했고, 괴롭도록 굳건한 사람들의 선입견 아래서도 당연한 것을 당연한 제자리로 돌려놓는 노력은, 차츰 사람들의 뇌리에 AIDS와 동성애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정리를 뿌리박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당연하지 못했던, 현실에서 숨쉬는 동성애자 감염인들이 있었습니다. 초창기 친구사이의 요직을 역임했던 故 오준수라는 분이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독특하게도 그 시절 자신이 감염인임을 대내외에 알렸고, 그에 관한 많은 글들을 남겼습니다. AIDS 합병증으로 인한 간성혼수로 1998년 9월 13일 사망한 후,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는 그를 추모하는 유고집을 2000년 2월 11일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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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사이 20년사> 발간기념회 전시물 中(2014.9.20).




겨울이면 더 심했어. 겨울이면, 겨울만 되면 난 발정난 암캐처럼 쏘다녔지. 이 거리 저 거리를 가리지 않고, 그 어떤 곳이라도 내가 못 갈 곳은 없었어. 온몸은 불에 덴듯 뜨겁기만 했었고, 내리는 눈도, 차거운 겨울바람도 날 식혀주지를 못했어.

그래서 외로웠지. 이 세상 어떤 그 무엇으로도 날 달랠 수 없다는 것이 서럽고 외롭기만 했어. 아마 그때부터일 거야. 내 속에 城을 쌓기 시작했던 때가......

- 故 오준수, "편지4"(1995),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82쪽.



묘비명 없는 죽음

그 후 십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동성애자들에게 나쁜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들도 많았습니다.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1년에 1번이지만 가슴을 펴고 거리를 활보하는 축제의 전통도 쌓여갔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삶을 다루는 문화창작물들도 지속적으로 생산되었고, 최근엔 시청 로비에서 내가 성소수자라고 모여 외치는 정치적 가시화의 위업도 달성했습니다. 인권단체들 스스로 내걸던, 동성애자로서의 자긍심은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 되어가고 있고, 동성애에 대한 차별금지가 시대의 화두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HIV/AIDS는 어떨까요. "감염인과 환자들의 인권과 치료권을 확보하기 위한"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가 2004년 2월 발족 이래 활발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고, 그 사이 윤가브리엘님, 노랑사님 등 본인이 감염인임을 커밍아웃한 활동가분들도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HIV/AIDS 문제는 아직도 무언가 이야기하기 껄끄러운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성애자들의 저 가없는 자긍과 자기확신과 시대의 물결 앞에, 감염인들이 설 자리는 왠지 적어 보입니다.

그들의 자리가 협소해 보이는 까닭은, 그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아니 그들이 대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조차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유는 감염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증을 말하기 어려운 까닭이겠고, 앞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감염인들이 그런 주체 없는 책임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때, 그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고는 하였습니다.

HIV/AIDS 감염인의 죽음 중 상당수는 가족이 배석하지 않고, 빈소가 꾸려지지 않고, 장례식이 치러지지 않는 식으로 수습됩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 그들이, HIV/AIDS와 개념적으로 혼동되던 지난날을 극복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찬란하게 드러내는 동성애자들 뒤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감염된 건 동욱 씨, 당신 책임이 아냐. 오히려 내가 동욱 씨를 감염시켰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 단지 동욱 씨가 먼저 검사를 받은 것뿐이야. 동욱 씬 내가 감염된 것이 마치 자신 때문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러지 마. 내 탓일 수도 있어. 아, 어떤 심정이었을까?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안쓰럽고 답답했을 그 심정. 다가가 내게 얘기할 수도 없었을 테고, 떠날 수는 더더욱 없어서 그렇게 전화로 내 곁을 빙빙 돌던 바보 같은 사람......

추석 이후, 한 통화의 전화를 끝으로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고향에서 당분간 쉴 거라던 그 사람, 동욱 씨는 결국 신문지상의 조그마한 기사로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국립보건원 조선생에게 그가 자살할 만한 까닭을 물었다. (...) 동욱 씨는 자신이 감염자라는 이유로 해서 치료가 더디어진다는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결국 자살로써 자신의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피눈물을 삼켰다. 어쩜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어쩜 세상에 그럴 수도 있단 말인가? 정말 조물주는 있는 건가? 있다면 어째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 故 오준수, "사랑과 오욕의 연대기, 1964~1993(<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도서출판성림,1993) 발췌본)",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44쪽.

"사람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지 아세요?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면 제가 감염자라는 사실을 더 느끼게 된다구요. 그런데 뭐가 좋아서 웃으며 맞이하겠어요? 제 심정이 어떤지 아세요? 거울 보기에도 겁이 난다구요. 갈수록 괴물 같아지는 얼굴을 볼 때마다 거울을 부숴뜨리고 싶고, 매일 죽고 싶은 마음뿐이라구요.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들까지 제발 잊어버리고 싶어요. 모든 게 다 싫어요. 이제 다 죄의 대가인가요? 죄를 아무리 많이 지었다고 해도 그렇지, 나의 끝은 죽음밖에 없잖아요. (...) 차라리 매일 밤에 저는 자다가 그대로 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잠들어요. 그 다음날 일어났을 때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요?"

- 권로사 수녀, "이 세상 소풍을 끝낸 루까에게",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7쪽.

나... 사람으로 태어나지 말기를...

- 故 오준수의 일기, 1998.8.8. (추모집 미등재분)



내가 먼저 떠나가는 것

감염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이 자리에서 새삼스레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감염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부정적인 상태보다 더한 진공의 처지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그런 진공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걸까요. 그런 멸균실 안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 유고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을 말한다면, 글쓴이는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끝까지 낯설어하고, 종내엔 그로부터 먼저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사람'들이 감염인들을 얼마나 노골적이고 교묘히 밀쳐낼 수 있는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감염인 자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얼마나 무섭도록 변하지 않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희망인지를 아는 그들은, 끝내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제 손으로 거두어갑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차라리 먼저 작별을 준비하고 관계를 끊습니다. 그쯤 되면 구태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처음에는 눈에 뻔히 보이는 외부의 압력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 모두와 아예 차라리 앞서 끊어지고픈 까닭으로, 그들은 거듭 세상 속에서 지워집니다.

이런 마음을 품고도 세상에 무언갈 끊임없이 던지고, 토로하고, 아무 기대도 없는 채로 남에게 그래도 무언갈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故 오준수님 이후 같은 단체에서 감염인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분이 나오지 않는 것일 테고, 몇몇 활동가들의 분투에도 불구 감염인들의 가시화는 여전히 몇몇 닫힌 모임에서만 조심스레 이루어지는 것일 겁니다. 그분들의 용기가 대단하게 비춰질수록, 그것을 대단하도록 만드는 세상과 자신을 향한 이중의 폐절은 더욱 그 두께를 드러내는 셈입니다. 그만큼 이 글편들 사이에 도사린 절망의 깊이는 치명적이고, 또 십몇년 전의 글이라 믿기 힘들 만큼 현재적입니다. HIV/AIDS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별로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감염인의 내면을 통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일이

뭔지 모르고 삽니다.

내가 죽는 일이

뭔지 모르고 그냥 삽니다. (...)

내가 사는 일이

뭔지 모르고 살 동안에도

내가 죽는 일이

뭔지 모르고 그냥 살 동안에도

세상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왔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서늘한 눈으로

그저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 故 오준수, "사랑과 오욕의 연대기, 1964~1993(<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도서출판성림,1993) 발췌본)",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37쪽.

난... 혼자 살고 싶다.

아파도 혼자 아프고, 살아도 혼자 살고 싶다. 발악을 해도 혼자 발악하고, 포기를 해도 혼자 하고 싶다. 내가 아프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들이 아파 시들어가는 모습 또한 보기 싫다. (...)

멀리 가고 싶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내가 모르는 어느 도시나 시골 혹은 항구나 섬이라도 좋겠지. 그래서 모르게, 아무도 모르게 살다가, 세월도 모르게 살다가 저 이름모를 야산 언덕배기에 피었다 시들어버리는 잡초처럼 흔적없이 사라져버리고 싶다.

- 故 오준수의 일기, 1998.5.4. (추모집 미등재분)



'현재'라는 신비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불과 몇년 전의 동성애자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졌던 일들입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세상에 대한 기대를 먼저 접는 폐절의 과정 또한, 마찬가지로 정체성을 고민하는 과거와 현재의 동성애자들도 한번쯤은 겪어봤음직한 체념들입니다. 세상이 나아지리란 헛된 기대를 아예 접는 것이 차라리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었던 경험은 동성애자에게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에게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동성애자들 중 적지 않은 수는 이제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우리 몫을 내놓으라고 당당히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로 동성애는 변태성욕이 아니라 삶의 한 양식이라는 외침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되기 시작한 걸까요? 대체 어떤 조화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부정하던 "더러운 호모새끼들"이, 종태원과 시청에서 제 얼굴 팔리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에이즈 환자"의 몫 또한 그렇게 나아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요? HIV/AIDS에 대한 객관적 지식이 지금보다 널리 보급되고, 바이러스와 합병증에 대한 더 나은 치료약이 개발되고, 그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를 사회의 낙인이 점차 우스운 것이 되고,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체계적으로 접어야 했던 감염인들이, 그들의 삶 안에서 세상에 대한 기대를 다시 찾게 되는 날이, 기여코 오리라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감염인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을 밝히는 것이 더는 부끄럽지 않고, 커뮤니티 안에서 AIDS를 웃고 떠들어도 누구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그런 세상을, 지금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십몇년 전의 동성애자들 또한, 오늘과 같은 세상을 쉽게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은 때로 몇몇 눈밝은 이들의 분투에는 꿈쩍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변해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한 집단, 혹은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한 기대를 잃었다 다시 찾는 일은 그래서 참으로 신비스러운 과정입니다. 그것은 남이 그리 부추긴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故 오준수님의 글들 속에는 그 기대를 놓았다 다시 쥐고, 힘겹게 쥐었던 것을 다시 팽개치고, 끝내는 그것을 다시 주워올리는 신비의 궤적이 그려져 있습니다. 감정의 파고를 오르내리는 것이 때론 유약해도 보이지만, 그 감정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 분은 세상 하나가 육박했다 멀어지고, 멀어졌던 그 세상을 다시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반기는 것 같다가 다시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고 밀어내고, 또 그런 후에도 벤 자리에 차오르는 살갗과 염증같이 수시로 돌아왔을 희망과 절망의 복마전을, 어찌 잔망스럽고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머릿속에 그려지는 비감염인의 배제 앞에 아무런 희망이 안 남게 되던 그 순간에, 아니라고,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누가 그 분 앞에 감히 그 절망의 깊이를 지레짐작이라 비웃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그리워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하며 살았다. 나 혼자서 살기에도 세상은 너무 험하고 급급하기만 했다. 가슴에 그리움을 담기엔 내 숨통이 너무 좁고 작았다.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기로 작심하자 숨통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J, 세상 사는 일이 그렇게 팍팍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난 아프면서 또 한번 깨달았다.

난 정말이지 나를 버리고 싶다.

그것은 제대로 살고 싶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나와 연결된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문득 희망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그 희망이란 녀석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들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온몸으로 느끼며 살려한다.

- 故 오준수, "편지9"(1995),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84쪽.

감염인들은 비감염인들이 풀어놓을 폭력과 배제의 크기를, 비감염인 자신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누군가가 '나는 저들보다 낫다'는 안도를 채우고, 부정하고 삿된 것은 멀리하라는 가족 이데올로기에 새삼 몸 담고, 이 모든 불행을 재수와 팔자와 개인의 몫으로 돌려놓고, 같은 인간이라 엮이기 소름끼치도록 싫은 누구를 합법적으로 잊고 살기 위해 애쓴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감염인들의 머릿속에 이미 예언된 바들을 몸소 실행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공포와 체념 속에서 몇번이고 예고되었던, 그들의 예지 그대로 움직이는 꼴이 될 것입니다.

오늘과 다른 과거가 이제 와선 낯설어 보이듯이, 누군가의 현재는 결국 후에 낯선 것이 되고 맙니다. 한 감염인 게이가 온몸으로 써내려간 희망과 절망의 노둣돌 앞에, 어느 때보다 쾌조를 보이는 것 같은 이 땅의 동성애자 커뮤니티들이, 지금의 현재가 어째서 신비일 수 있고, 자신들의 과거에 비추어 누군가의 현재가 어째서 문제적인지 살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보다 세련되고 자꾸만 높아지고 싶고 이제는 발밑을 보지 않아도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기 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과 너무도 유사하게 속을 태우던 감염인들에게 한번쯤 손 내밀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같이 살' 수 있는, 그럼으로써 저마다 진정으로 존엄해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죄를 얼마나 더 용서받아야 마땅할지에 대해, 아직 조금은 더 함께 나눌 말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세상이여 부탁합니다. 우리들에게, 더욱더 꼭꼭 숨어야 하는, 그래야 그나마 세상에서 살 수가 있는 많은 감염자들에게 그 가슴을 열어 주세요. 우리들은 혼자서 외롭게 살아왔지만, 늘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 故 오준수, "사랑과 오욕의 연대기, 1964~1993(<겨울 허수아비도 사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도서출판성림,1993) 발췌본)", 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오준수를 추모追慕함>, 2000, 56-57쪽.

동성애와 HIV/AIDS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동성애자와 HIV/AIDS 감염인은 서로 다른 사람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개념을 사는 것이 아니기에, 개념이 아닌 삶 안에서 서로를 소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래뱃속 같은 삶 속에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감염인과 비감염인 모두, 이 문집에 실린 글귀들처럼 얼마간 서툴고 아름답게 얽힐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우리는 끝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끝으로 서른 셋을 일기로 영면하신 故 오준수님 또한, 그분의 노고에 값하는 평화와 안식을 얻으셨기를 이 글을 빌어 간절히 소망합니다.



* 그간의 한국 HIV/AIDS 인권운동의 약사와 역대 이슈는 친구사이 담론팀 2차 기획토론(2015.3.31.) 기사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 이 글은 친구사이 소식지 55호(2015.1.29.)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