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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2일 10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2일 14시 12분 KST

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쟁취한다는 것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면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을 시설수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인권을 침해했던 역사와 재생산권리의 침해는 궤를 같이 한다.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사생활을 갖기 어렵고, 성생활 영위는 부정되었으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박탈되기도 했다. 시설입소와 거주를 조건으로 한 불임수술이나 낙태수술을 강요한 역사는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 보고서 등 여러 증언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해 말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는 기획단을 형성하여 여성운동계, 대구지역의 장애여성 자조모임 구성원과의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올 9월에는 목포지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및 장애여성회원들과 간담회를 앞두고 있다.

1. 화두를 던지기

- 장애여성이 누구와, 언제 임신하고 출산할지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것

- 장애여성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성관계와 피임여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는 것

- 장애여성이 양육과정에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고 그 과정에 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

- 장애여성이 가진 장애의 조건으로 인해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이 부정되거나 그러한 경험이 폄하되지 않는 것

- 임신중지(낙태)에 대한 장애여성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결정이 장애나 질병에 대한 우생학적 관점이나 국가의 인구통제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 또한 더 나은 조건의 생명을 향한 유전적 기술 개발을 둘러싼 불평등한 경쟁에 대해서 장애여성의 입장을 만들어나가는 것.

- 장애여성이 인류의 생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재생산 활동에 주체성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것(반드시 임신과 출산을 통한 것이 아니라 해도).

- 장애여성이 취약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성으로만 규정되는 것에서 벗어나 정책의 결정자로서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대표하는 힘을 갖는 것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장애여성공감이 재생산권리에 관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지고 있었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매우 범위가 넓고, 복잡하며, 결론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시작돼 지금까지 누군가 태어나고, 또 누군가를 낳고 기르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내 부딪혀 왔던 문제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이러한 화두를 은폐하는 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서지 못했고, 소수자들이 논의 과정에 참여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도 없었기 때문에 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구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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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연속포럼 -대구지역 장애여성모임' (장애여성공감 제공)

2. 재생산권리에 접근하기

재생산권리라는 용어는 낯설기 때문에 이 말을 통해서 직접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만,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과정을 포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재생산권리는 1995년에 열린 북경여성대회에서 "인권"으로 천명되었다. 우선 성적 건강 및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문제들에 있어서 여성이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또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은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에 도달할 권리와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생활을 영위할 권리 그리고 재생산 여부, 시기, 빈도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자유를 포함한다. 또한 여성이 안전하게 임신 출산을 할 수 있고 부부가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최상의 보건서비스에 접근할 권리와 안전하고 효과적이고 수용할 수 있는 가족계획 정보 및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뜻한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면 어떠한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장애인을 시설수용의 대상으로만 간주해 인권을 침해했던 역사와 재생산권리의 침해는 궤를 같이 한다.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사생활을 갖기 어렵고, 성생활 영위는 부정되었으며,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박탈되기도 했다. 시설입소와 거주를 조건으로 불임수술이나 낙태수술을 강요한 역사는 1999년 김홍신 의원의 조사 보고서 등 여러 증언을 통해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장애여성이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생활을 영위할 권리는 권리로 인식되지 않거나 항상 부차적인 권리로만 여겨져 온 경향이 있고, 이에 대한 대항 담론 또한 부재했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룰 둘러싼 화두가 한국의 장애운동과 여성운동, 장애학과 여성학에서 부차적으로 다뤄져 왔고 재생산권리에 대한 장애와 젠더의 교차적 관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을 비롯한 어떤 여성 혹은 사람이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관계를 영위하지 못하게 되면, 피임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폭력이나 성병에 취약할 수도 있고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 충분히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애여성이 재생산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과 자신이 선택하고 구성한 가족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말하자면 긴 시간을 조망하는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가 지속가능하고 미래를 계획해나가는 생활이 가능한 구조에서 재생산권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미래를 생각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 또한 환대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재생산권리가 왜 인권의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하고, 차별과 평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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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공감 제공

3.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해나갈까.

장애여성의 재상산권리를 둘러싼 복잡한 이야기들을 꺼내보고자 올해부터 '장애/여성 재생산권리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이하 기획단)을 운영하고 있다. 여성, 건강, 법률단체 활동가와 변호사, 연구자들이 모여서 한국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여성의 재생산권리 확보 노력을 리뷰하고,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새로운 화두와 의제를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여성운동계, 장애운동계, 장애여성모임을 만나서 토론하고 경험을 듣고 정리하고 있다.

기획단 활동을 통해서 재생산권리를 좀 더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를 가진 이들의 입장에서 바라볼 있었다. 이를 통해 재생산활동을 정상가족의 역할로 동일시하거나 국민의 의무나 책임, 성적 역할에 있어서 정상성을 증명하는 활동으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인구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시각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젊고, '건강한 몸'을 가진, 중산층의 혼인한 부부가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다. 이는 동시에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빈곤하거나 혼인상태가 아닌 커플, 특히 여성의 재생산은 위험하고 바람직하지 않고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하지만 그 동안 여성운동이나 장애운동계에서 이러한 분할과 배제에 주목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장애여성의 양육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펼쳐왔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긴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임신중지(낙태)를 둘러싸고 여성의 선택과 생명권의 충돌이라는 사회적으로 잘못 형성된 구도를 깨는 것 또한 포함된다. 직관적으로 장애여성의 위치를 떠올려보면 이 구도가 가진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임신중지를 결정할 때 작용하는 권력과 힘은 매우 다양하다. 임신의 주체가 누구인가(장애, 나이 등 신체적으로 바람직한가, 혼인여부나 경제적 조건 등 상황적으로 바람직한가 등)에 따라서 이 결정에 대한 평가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또한 태아가 일정기간까지 가지는 모체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성을 인정하고, 태아와 여성의 입장이 당연히 충돌할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가 누구의 입장인지 질문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러한 결정에 대해 국가가 원천적으로 형법으로서 처벌할 근거와 정당성에 대해서 의심해야 한다.

또한 그 여정에는 장애/여성이 국가와 관계 정립을 다시 한다는 의미도 있다. 장애여성이 태어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 안에 장애여성이 만족스럽고 안전한 성관계를 누리고, 피임과 임신출산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양육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건강권과 정보권에 도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권으로 옹호하기 위해서는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국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변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하든 하지 않든 모두가 다음 세대와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는데 동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국가와 사회의 입장과 복지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