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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2일 06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3일 14시 12분 KST

대구발 정치혁명

연합뉴스

4·13 총선의 최대 관심사는 누가 뭐래도 지역은 대구, 인물은 유승민과 김부겸이다. 수십년 동안 한국 정치를 압도해온 지역주의 관점에서 볼 때 대칭적인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광주와 함께 묶어 두 도시의 동시 변화에 주목하는 시각이 많지만, 나는 그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 대구의 변화는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충격의 면에서 광주의 그것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광주를 변화라고 한다면 대구는 혁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한 정당이 각 지역에서 누려온 독점이 해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외양의 비슷함이 있긴 하지만, 그 속살은 크게 다르다. 광주의 변화가 아무리 크다 한들 '바리케이드 안'의 요동이지만, 대구의 변화는 없던 바리케이드가 새로 생기는 일대 사건이다. 이런 이유로 정통 야당의 깃발을 내건 김부겸 한 명이 대구에서 당선하는 것은 국민의당 후보들이 광주에서 싹쓸이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

같은 지역주의라고 하더라도 다수파인 영남패권주의의 균열과 소수파인 호남지역주의의 그것은 한국 정치에 끼치는 충격의 정도가 다르다.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하는 영남지역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지배권력을 창출할 힘이 있지만, 소수파이며 수세·저항적인 호남지역주의는 아무리 결집해도 자력만으론 그런 힘을 가질 수 없다. 즉, 대구의 구조적 변화 없이 한국 정치의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대구에서 질이 다른 정치세력이 경쟁체제를 이루는 것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매우 바람직하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 유승민과 김부겸이 있다는 것은 대구의 행운이자 한국 정치의 축복이다. 두 사람은 결이 다른 정치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번에 당선된다면 모두 그들의 뜻과 관계없이 한국 정치를 이끌 큰 지도자 반열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다.

김부겸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새누리당의 거물 후보 김문수에게 우세를 빼앗기지 않았다. 그만큼 당선 가능성이 크다. 정통 야당의 후보로는 중선거구제로 치러졌던 1985년 12대 선거 이후 31년 만이라고 한다. 김부겸이 빛나는 것은 수십년 만의 대구 야당 의원 탄생만은 아닐 것이다. 3선의 경력을 쌓게 해준 수도권의 선거구를 표표히 떠나 불모지 대구에 야당의 뿌리를 내리겠다는 기개와 진정성이 고향에서 통했다는 점이 크다. 영호남 지역주의의 상승작용이 옅어지는 상황 속에서 '대구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그의 개인적인 고투가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대구에서 두 번의 패배와 그것을 버텨낸 힘은 반대자를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을 핵심 덕목으로 하는 정치 지도자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그의 정치적 비전과 철학이 무엇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승민은 생존을 목표로 둘 수밖에 없었던 김부겸보다 여유가 있었기 때문인지 비전과 철학이 비교적 잘 다듬어져 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의 국회 대표연설에는 '따뜻한 보수주의자' '개혁적 보수주의자'로서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연설에서 중복지-중부담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면서 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표현이 박근혜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면서 탄압을 받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에겐 정치적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원내대표에서, 공천에서 쫓겨나면서 인용한 헌법 조항은 많은 사람에게 신선함과 함께 적어도 헌법 이하로 후퇴할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믿음을 줬다. 더욱 커진 그의 위상이 앞으로 여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벌써 기대된다.

유승민, 김부겸이 이끄는 대구의 정치혁명은 이미 반쯤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어줄 사람은 대구의 유권자다. 그리고 대구 혁명을 한국 정치의 혁명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깨어 있는 시민의 몫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