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1월 12일 12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2일 14시 12분 KST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연합뉴스

"세계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번영하는 남한과 억압적이고 가난한 북한 사이의 70년에 걸친 이념 대결은 매우 확실한 결론에 이르렀다."

"(자긍심과 가치관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북한의)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앞의 글은 자유시장 경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서울 특파원 사이먼 먼디가 10월26일 쓴 '새 역사교과서를 두고 낡은 싸움을 하는 남한'이란 칼럼에서 첫 문장을 따온 것이고, 뒤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11월5일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한 발언을 옮긴 것이다. 누구의 인식이 맞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단지 여기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박 대통령과 국제사회의 남북을 보는 시각차가 커도 너무 크다는 점이다.

먼디 특파원은 이 칼럼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그림은 훨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시장경쟁의 마당에 국가독점을 부여할 때 상품의 질은 떨어지고 소비자의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그것은 북한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역사 교훈이다." 최근 복거일씨와 같이 평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옹호해온 우파 이론가들이 갑자기 신무기라도 발견한 양 교과서 문제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거론하면서 정부 개입, 즉 국정화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얼마나 통렬한 반박인가. 우리나라 우파의 수준 낮고 허접스런 인식과 논리가 창피할 뿐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문인 일본 <아사히신문>의 국정화 비판은 더욱 직접적이고 준열하다. 이 신문은 '한국의 교과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가'라는 10월19일치 사설에서 "민주화 이래 30년 가까이 된 한국은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 선진국이다. 그런데 지금 왜 역사교과서만을 국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정화는 "국민통합은커녕 사회에 불신감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통합은 우리나라 안의 것을 지칭하지만 사회의 불신감은 일본 사회를 포함한 세계 사회의 불신감도 포함한다고 봐야 옳다. 국정화는 그만큼 국제적으로 나라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최근 여러 기회에 만난 일본의 기자들과 학자들은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걱정 반 조롱 반의 논평을 해댔다. 일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주문하더니 국정화를 하면서도 그런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국정화 여부를 법률이 아니라 행정지침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일본 외무성 누리집에 (한국과의) 가치 공유를 뺀 것이 결국은 맞는 조처가 아니었는지 등등.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처지가 서글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나를 부끄럽게 하는 으뜸 주제라면, 바로 다음에 있는 것이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한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이다. 애초의 공판 일정대로라면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인 10월말에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한달 정도 미뤄졌다. 3년 반 만의 한-일 정상회담(11월2일)이란 대사를 앞두고 민감한 현안을 회피하려는 꾀로 보이지만, 그래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베 신조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공격자의 입장에서 세게 문제를 제기한 건 확실하다. 산케이 문제는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겠다는 작은 욕심에 언론자유라는 대의를 훼손한 대표적인 소탐대실 사건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이라도 언론 탄압국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최소화하려면 선고 전에 문제를 매듭짓는 결단을 내리는 게 좋다.

울고 있는 아이나, 정원 한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주검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아니다. 최근 일어난 일들 중에서도 교과서 국정화와 산케이 사건 같은 어이없는 짓들이 나를, 아니 우리를 더욱 슬프고 부끄럽고 안타깝게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