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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1일 06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1일 14시 12분 KST

'대통령의 속내'에 대한 탐구

연합뉴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무생물이나 본능을 숨김없이 노출하는 동물과는 달리, 일부러 남의 눈을 속이길 능사로 하는 사람의 속셈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고 해서 짐작까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때보다 화가 나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더욱 본심을 잘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목함지뢰 사건이 최고조의 휴전선 긴장을 불러일으킨 8월 말부터 최근 유엔 총회 참석까지 한달 남짓이 집권 이래 가장 기분 좋은 기간 중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로 20%대 후반까지 추락했던 지지율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반등하고, 박 대통령도 나라 안팎에서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계와 우려 속에서 9월 초 중국에서 열린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전승절)에 참석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귀국길 비행기 안 기자간담회는 그가 이 행사 참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핵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평화통일'이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는데, 중국과 손잡고 북을 제압하겠다는 의도가 누가 봐도 역력하다.

중국 전승절 참석이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향방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면, 중국 방문 직후 이뤄진 대구 서문시장 방문 행사(9월7일)는 내년 총선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생각을 가장 잘 내비친 이벤트였다. 박 대통령은 서문시장을 방문하면서 의례적으로 초청하던 지역구 의원을 한 명도 부르지 않고, 몇몇 대구·경북 출신의 청와대 참모들을 대동했다. 자신이 배신자로 지목했던 유승민 의원을 비롯해 유 의원과 친한 지역 의원들에 대한, 이보다 확실한 경고는 없을 것이다. 이튿날의 인천 지역 행사에서 여야 의원 12명 전원을 초청한 사실과 6월 국회법 파동 때 유 의원을 겨냥해 "국민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한 주문을 연결해 보면, 그림이 더욱 선명해진다.

박 대통령이 국방부의 소음 피해 대책용 예산까지 당겨쓰면서 부사관 이하 전 장병에게 추석맞이 특별휴가와 특별 간식을 '하사'한 것도 그의 속내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금품을 내리는 것'을 뜻하는 이 말을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고 한 김기춘 초대 비서실장의 표현과 짝을 맞춰 보면, 박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인식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봉건시대의 그것과 어울린다는 것을 쉽게 추찰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북 흡수통일, 내년 총선 및 내후년 대선에서의 주도권 행사, 상하유별의 선민의식을 드러낸 박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가 하나의 점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집권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 누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일반 장병에 대한 특별휴가 하사도 봉건 의식의 이면에 젊은층에 대한 구애가 강하게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추석 연휴 기간 유엔 총회에 참석해 벌인 활동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연말 파리 기후변화 정상회의 성패나 유엔 창립 70주년에 대한 평가라는 국제 보편적인 관심보다는 새마을운동 국제화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띄우기에만 초점을 맞춘 듯 행동했고, 청와대도 그렇게 홍보했다. 국제무대보다 의도적으로 국내 정치에 무게를 둔 행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친박계가 때맞추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역점 사업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견제하고, 반 총장의 대선 후보 옹립설을 흘리는 것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이런 지향이 민주·수평·투명·통합·화해의 시대정신과 불화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박 대통령과 시대의 대결을 관전·심판할 수 있는 중대한 지점에 서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