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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7일 06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7일 14시 12분 KST

남북 지도자의 닮은꼴 '배신의 정치'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오뉴월 서릿발같이 서슬 퍼런 모습으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대한 '탄핵문'을 읽어내려갈 때, 1년 반 전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바로 2013년 12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그의 고모부이자 제2인자였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전격 숙청·처형한 사건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서 북의 장성택 사건이 자연스레 떠오른 건 스스로 '만인지상'의 절대적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 지도자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반한다고 생각하는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남이나 북이나 다를 게 없다는 학습된 육감이 작동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북쪽의 <조선중앙통신>이 장성택이 처형된 뒤 내보낸 장문의 '죄상 보도문'을 찾아 다시 읽어 봤다. 양쪽 지도자들의 인식과 태도의 유사함에 새삼 놀랐다.

장성택이 백두산 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 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충정으로 갚는 것이 인간의 초보적 의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과 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 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정치권의 존재의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자 자기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북 간 정치체제의 차이 탓에 배신자를 규탄하는 데 동원한 용어는 다르지만, '배신자'를 정의하는 논리 구조에선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이 하늘 아래에서 감히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 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 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다.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 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남북의 배신자 처리법이 물리적 죽음과 정치적 죽음으로 확연히 갈리지만, 배신자는 반드시 보복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만은 엇비슷하다.

자기중심적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기준 삼아 그에 어긋나는 사람이나 세력은 반드시 박멸하고 말겠다는 태도는 21세기 문명사회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신하가 군주를 부모처럼 떠받치는 것을 당연시하는 봉건제나 군주제 아래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런 점에서 아시아에서 손꼽는 민주주의를 가꾸어왔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이런 인식과 태도를 드러낸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안거리도 있다. 북쪽은 지도자의 눈에 벗어나면 정치적·물리적 목숨이 한꺼번에 소멸되는 체제이지만, 남쪽은 한 사람의 뜻에 따라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좌지우지되는 사회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지침과 친박 세력의 일사불란한 작전수행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높게 나오고 있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통령 쪽 사람들이 결국엔 '배반자 유승민'을 퇴치하는 데 성공할지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시민을 핫바지로 알고 잘못 삼킨 독약임을 절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물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배 안의 사람들만 모르는 것 같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