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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12일 10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3일 14시 12분 KST

근조! '박근혜 외교'

연합뉴스

한국 외교가 새해 벽두부터 사면초가에 몰렸다. 전혀 머릿속에 상정조차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의 등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던 차에,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아래위에서 소녀상과 사드 문제로 쌍포 공격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도와줄 친구 나라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고립무원, 그렇다고 이 위기를 주체적으로 돌파할 내적 능력도 없는 참담한 상황이다. 내우외환이요, 절체절명의 위기다.

문제는 이런 고립과 위기가 다른 누가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 스스로 불러온 외교 참사라는 점이다.

먼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반발을 보자. 일본은 소녀상 설치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 2015년 12월28일 합의에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모리모토 야스히로 부산총영사의 소환과 한-일 통화스와프 협의 중단, 한-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와 부산총영사관 직원의 부산시 관련 행사 참가 중지라는 초강경 보복 조처를 발표했다. 반인권적인 위안부 문제를 애초 누가 일으켰는지 생각하면 일본의 조처가 적반하장이고 복장이 터질 일이지만, 일본이 큰소리를 칠 빌미를 만들어준 것은 박 정권의 무능한 대일외교이다. 한국이 도덕적인 우위에 서서 국제여론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풀 수 있는 위안부 문제를 `무모한 강경책 뒤의 어설픈 합의'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죄가 크다. 이런 외교의 실패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우리는 10억엔을 냈다. 그다음은 한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 다음 정권도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도리어 훈계조의 말을 듣는 역전된 상황을 초래했다.

사드 배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하루아침에 찾아온 위협도 아니고 박근혜 정권 출범 이래 내내 상존해온 문제인데다 2014년 중반부터 미국 군부 쪽에서 줄기차게 사드 배치론이 비공식·공식으로 흘러나오는데도 2016년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때까지 박근혜 정부는 줄기차게 부인으로만 일관했다. 그때까지의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의 공식 입장은 미국으로부터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불 정책이었다. 애초부터 한국의 안보에 절대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했다면 미리부터 반대를 소리 높여 외쳐온 중국·러시아를 상대로 설득 작업을 펼치든지, 실제로 상황이 3불에서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바뀐 것이었다면 그에 합당한 설명을 하든지 해야 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 러시아는 지난해 7월8일 국방부가 한-미 간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전혀 그런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들로서는 한국 정부가 사기를 쳤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박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상황 변화를 눈여겨보며 유형무형의 전방위 보복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새해 한국 외교의 더욱 큰 도전은 '소녀상의 일본'과 '사드의 중국'으로부터가 아니라 트럼프 정권의 등장과 함께 일어날 세계 권력구도의 대격변에서 올 것이다. 트럼프와 그의 외교·안보 진영은 이제까지의 발언이나 성향으로 볼 때 중국과 대립하고 러시아와 협력하는 대외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이후 굳어진 미-중 협력 시대가 가고 미-러 합작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로 러브콜을 보내고,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며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하는 상황이 과연 한국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세계적 차원의 격변과 지역 차원의 중-일 갈등, 남북 대립이 교차하는 한반도 문제의 해법 찾기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돌파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세계정세의 변화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익에 가장 유리한 큰 그림을 그린 뒤 원칙을 가지고 끈기있게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큰 그림 없이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안에 매달리다가는 백전백패다. 사드와 위안부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미 `죽은 정부'인 박근혜 정부에 기댈 것은 없다. 박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마지막 할 일이 있다면 탄핵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물러남으로써, 새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실패한 외교 유산을 정리·수정·보완할 길을 터주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