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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4일 13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6일 14시 12분 KST

평범한 '직장 언론인'으로서 고토씨의 죽음을 마주본다

거대한 '죽음'의 숫자가 쌓일수록 사람은 불합리한 죽음에 둔감해지고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생각을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멀리 떨어진 중동에서 수만, 수십만명이 죽어가고 있는 분쟁에는 더욱 무관심해지지 않을까? 겹겹이 쌓인 수많은 죽음이나 어려움에는 하나하나 소중하고 통절한 배경이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전하고 그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길이 아닐까. 고토 씨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그런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토 씨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외든 국내든 하나하나의 죽음이나 어려움을 마주보면서 소홀하지 않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CHITOSE WADA

2월 1일 오전 5시가 넘은 시간, 스마트폰에서 요란한 소리가 계속 울려 깨어났다. 나쁜 예감이 들어 화면을 들여다봤다. 보고 싶지 않은 최악의 결말이 있었다.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납치된 언론인 고토 켄지 씨의 인질 교환을 둘러싼 움직임이 긴박하게 진행된 1월 말부터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편집부는 IS 관계자와 현지 언론인 등의 SNS를 24시간 지켜보고 있었다. 협상 시한으로 정해진 1월 29일 일몰 시간이 지나자 인질에 관련된 정보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건 전날인 1월 31일 토요일 낮, 한 IS 관계자가 "저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다면 여기로 오라"며 단체채팅 앱에 등록하도록 권유하고 있었다. 그 채팅방은 그룹의 멤버들이 뭔가 메시지를 발신할 때마다 큰 소리가 났지만, 거기서도 정보 발신은 많지 않았다.

불규칙한 장시간 근무로 피로가 쌓여 있었다. "장기전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날짜가 바뀔 무렵 직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서 2월 1일 오전 3시쯤 잠들었다.

그 후 2시간도 안 돼 채팅방이 연달아 울었다. IS 관계자가 흥분 상태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신의 가호를"이라는 식의 구호를 연호하고 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PC를 켰지만, 끔찍한 사태에 손이 떨려, PC를 부팅할 때 암호를 3번이나 잘못 타이핑했다. 동료에게도 전화했지만, 잘못 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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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만난 적은 없었지만, 고토 씨는 세계의 분쟁 지역을 적극적으로 찾아가 난민과 어린이를 많이 취재한 언론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전쟁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동경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억이 났다.

처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중학생 때였을까. 당시 자주 보던 TV 프로그램에서 분쟁 지역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의 업적을 여러 번 특집 방송으로 틀었다. "얼마나 멋질까"라고 동경했다. 그 무렵 한국은 민주화운동이 한창인 시기였는데, 경찰의 최루탄에 맞서 싸우는 시위대와 분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일 뉴스에 나왔다. 또 아사히신문의 한 지국이 우익 테러 습격을 당해 젊은 기자 1명이 엽총에 살해되었다. 이제 돌아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난 그런 취재현장을 동경하는 중학생이었다.

그 후 대학생이 되어 한국 유학을 거쳐 운 좋게 신문기자가 되었다. 해외 특파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에서 기자로 인정받아야 했다. 그래서 눈앞의 국내 취재 하나하나에 열중했는데,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도 했고 때로는 그 차이가 점점 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후 도쿄에서 특파원들을 지원하는 일도 했는데, 현지에 나간 선배의 눈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거나 호텔에 박격포탄이 명중하는 등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이 많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의 동경은 구체적인 공포가 되어 눈앞에 다가왔다. 그 후 10년, 15년이 지나 나의 주요 담당은 다시 국내가 되었다.

고토 씨와 내 일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너무 많은 죽음이 일어나는 현장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의 상황은 각자 나름대로 다르다는 것을 전하려고 한 것 아닐까.

신문사에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어느 날, 어느 지방 도시에서 여자 어린이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짧은 기사에 사실만 담아 끝낼 수도 있었지만, 유족 집 등을 취재해 지자체의 방호시설 설치에 잘못이 있었을 가능성을 기사에서 지적한 적이 있다. 얼마 후에는 107명이 숨진 철도사고 취재로 유족과 부상자를 찾아다녔고, 6,434명이 사망한 고베 대지진의 유족도 많이 만났다.

107명, 또 6,434명... 거대한 '죽음'의 숫자가 쌓일수록 사람은 불합리한 죽음에 둔감해지고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생각을 중단하게 되지 않을까? 멀리 떨어진 중동에서 수만, 수십만명이 죽어가고 있는 분쟁에는 더욱 무관심해지지 않을까? 겹겹이 쌓인 수많은 죽음이나 어려움에는 하나하나 소중하고 통절한 배경이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전하고 그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길이 아닐까.

고토 씨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그런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뜻밖에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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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한국도 안전하다. 회사를 떠나 전쟁터에 몸을 던질 용기도 없는 평범한 '직장인 기자'로 지내왔던 나로서는, 고토 씨와 같은 용기 있는 언론인이 인간의 생명을 협상 도구로 희롱하는 세력에 희생이 된 것이 턱없이 분해진다.

두 살, 그리고 한 살도 안 된 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살해된 고토 씨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외든 국내든 하나하나의 죽음이나 어려움을 마주보면서 소홀하지 않게 전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가족을 아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