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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4일 13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4일 14시 12분 KST

나의 북한 방문기 1편 | 인터넷 언론이 취재 허가를 받다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입국시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대표적인 신문사는 취재 신청조차 하기 어렵다. 안내인이 말했듯이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문은 아무래도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이유도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이례적인 동행 취재 허가가 나왔다. 취재 신청 협상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북한 입국 후 그들에게 "인터넷 언론"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9월 15일부터 23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다. 민간 성묘 방문단에 동행 취재한 것이다.

북-중 국경지대 회령, 항구 도시 청진, 칠보산, 함흥 등 주로 지방을 돌아다녔다.

성묘 방문단은 주로 70, 80대 노인이었지만, 이들이 북-일 관계의 명운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5년 8월 9일, 이미 일본의 태평양 전쟁 패배가 거의 결정된 시기에 소련이 참전해 한반도 북부를 점령했다. 당시 한반도 북부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함흥 등 주요 도시에 있는 수용 시설에 갇혔다. 1946년까지 기아와 추위, 전염병으로 이들 중 3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일본과 국교를 맺지 않은 북한 성묘 방문은 유족의 소원이었으나 오랫동안 실현되지 않았다. 2년 전부터 북한이 당시 일본인 유골 조사를 시작해 일본 민간 단체의 성묘 방문단 파견도 시작됐다.

한편 북-일 양국 정부도 2002년에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문제 등이 터진 후 정체된 북-일 협상을 일본인 유골 문제를 계기로 타개하려는 의도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성묘방문단의 북한 방문은 이번이 10번째였다. 수면 아래서 북-일 협상도 계속돼 지난 5월 북한측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등에 대해 "재조사"를 하기로 공식 발표해, 북-일 협상은 급속히 진행됐다.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는 있지만, "재조사" 대상에는 피랍자뿐 아니라 일본인 유골 등도 포함되어 있다. 북한측의 중간 보고는 당초 9월 초로 예상되고 있었다. 만약 북한 체류 중 납치 문제에 큰 진전이 이뤄지면 평양에서 중요한 발표나 기자회견 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기자들은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지만.

성묘단 유족은 5명인데 동행하는 일본 언론 관계자는 무려 25명이나 됐다. NHK등 방송 5사와 교도, 지지 통신사, 그리고 마이니치신문과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김정은 정권에 들어서 영상 매체를 적극적으로 입국시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대표적인 신문사는 취재 신청조차 하기 어렵다. 안내인이 말했듯이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문은 아무래도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들어간다"는 이유도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이례적인 동행 취재 허가가 나왔다. 취재 신청 협상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북한 입국 후 그들에게 "인터넷 언론"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취재에 매일 동행하는 안내인들은 방송국이나 통신사, 신문사는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지만 특권 계급인 안내인들 중에도 인터넷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래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읽는 습관조차 없는 북한에서 안내인들이 나를 너무 경계했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일기형식으로 방문기를 올리고자 한다.

[9월 15일]

베이징에서 고려 항공을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는 활주로 확장과 새 터미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고려 호텔 방에서.

[9월 16일]

수도 평양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이날은 아시안게임 때문에 인천에 가는 특별편이 있었다.

약 1시간 후, 마치 농장 한가운데에 활주로가 있는 듯한 어랑 비행장에 내렸다.

소형 버스 2대로 나눠 타고 약 5시간, 청진을 거쳐 북쪽으로 달렸다. 제대로 포장된 도로는 도시 중심부 이외에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모자라기 때문에" 라고 해명하는 안내원 말에 지금 북한이 경제난과 경제 제재하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버스는 심하게 흔들렸다. 하루 종일 타고 있다가는 허리가 망가질 것 같았다.

북-중 국경의 도시 회령 입구에 있는 "회령 여관". 호텔에서는 공항에서 임대한 휴대전화의 전파가 들어오지 않았다. "따뜻한 물은 6시부터 7시까지만 나옵니다". 안내인 말에 빨리 샤워를 하려고 했지만, 내가 묵은 4층 객실은 다 온수기가 고장난 것인지 따뜻한 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9월 17일]

회령에서 먼저 안내된 장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어머니인 김정숙의 커다란 동상이었다. 여기는 김정숙 출신지고 거리 중심부에는 동상과 재현된 생가가 있다. 꽃다발을 바치라고 안내인이 말하자 유족 한 명이 고개를 숙였다.

회령 시내

건너편이 중국이다

그 후 1사간가량 국경을 따라 달렸다. 군데군데서 일본에서 가져온 휴대전화에 중국 전파가 들어왔다.

국경지대 "신전"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차는 멈췄다. 마을 입구에서 아버지의 명복을 빈 한 일본인 유족. 철도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1945년 8월 소련 점령 후 함흥 수용소에서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7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출생지를 찾을 수 있었던 그는 "하루라도 빨리 북-일 수교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기자들에게 호소했다. (계속)

더 많은 사진을 아래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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