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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5일 10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25일 14시 12분 KST

산케이신문 '공백의 7시간' 문제가 나를 불안케 하는 이유

매년 5월 3일에는 아사히신문 간부와 기자들이 모여 묵념하며 "언론에 대한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 아사히신문에서는 매년 이 시기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연재기사도 게재하고 노조는 대규모의 심포지움을 연다. 그중에서 매년 5월 3일에 큰 조화를 보내는 신문사가 있다. 바로 산케이신문 오사카 본사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익적"라는 형용사가 붙어 지면에서도 아사히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 신문이지만 입장 차이를 넘어 언론 탄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주는 셈이다.

2011년까지 나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있는 아사히신문의 취재 거점, 한신지국에 근무했다. 9명의 기자들이 취재로 바쁘게 나드는 뉴스룸에는 한 유영(遺影)이 모셔져 있다. 27년 전 불과 29세로 우익의 흉탄에 쓰러진 선배 기자 코지리 토모히로의 사진이다.

1987년 5월 3일 밤, 산탄총을 가진 사나이가 지국에 난입해 기자 1명을 살해, 1명에게 총상을 입히고 달아났다. 곧 아사히신문의 논조를 비판하는 우익의 범행성명문이 도착했다. 일본 각지에서 아사히신문의 시설뿐 아니라 정치인, 기업인들을 겨냥한 범행이 잇따랐지만 경찰 수사는 난항을 겪어 2002년에 시효가 만료됐다.

지국의 3층은 자료실이고 총탄으로 찢어진 상의와 총알 자국이 남은 소파 등이 전시되고 있다. 매년 5월 3일에는 아사히신문 간부와 기자들이 모여 묵념하며 "언론에 대한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맹세한다. 아사히신문에서는 매년 이 시기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연재기사도 게재하고 노조는 대규모의 심포지움을 연다. 지역 주민 등 많은 조문객들도 헌화를 하러 찾아온다.

그중에서 매년 5월 3일에 큰 조화를 보내는 신문사가 있다. 바로 산케이신문 오사카 본사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익적"라는 형용사가 붙어 지면에서도 아사히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 신문이지만 입장 차이를 넘어 언론 탄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주는 셈이고, 이 점에 대해 무척 감사하고 있다.

그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백의 7시간"에 대한 기사를 둘러싸고 한국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일본에서도 연일 보도됐으며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의 비상한 관심"이라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의 논조와 한반도에 대한 보도를 나는 전혀 지지하지 않으며 문제가 된 기사도 솔직히 "산케이신문다운 쓸데없는 기사"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한국정부의 대응도 "어른답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또 어른답지 못한 대응"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만 해도 5.18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1980년 5월 30일, 교도통신 서울지국에 폐쇄 명령이 나왔고, 1980년 7월 3일에는 소식 불명이었던 김대중 씨에 대해 "복부에 큰 부상을 입어 정신적으로 착란 상태에 있다. 가끔 발작적으로 '나는 공산주의자입니다'라고 외친다고 한다"는 미확인 정보를 보도한 아사히신문과 지지통신에 지국 폐쇄 명령, 지국장은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제는 현역에서 물러난 서울 특파원 선배는 나에게 1970년대에 가택 연금 중인 김대중 씨와 도청을 막기 위해 필담으로 취재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런 시대의 기억은 안타깝게도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상처 투성이의 김대중 씨가 일본어로 한국 민주화를 호소하는 모습이나, 많은 학생이 몸에 불을 붙여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시위를 나는 어렸을 때 TV뉴스에서 봤고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1960-70년대에 청춘을 보낸 나의 아버지는 "보쿠세이키(박정희)는 힘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무서운 사나인데..."라고 여전히 말한다.

그 딸이 지금 대통령이다. 얼마 전 쿠시니치 전 미국 하원의원이 한국의 민주주의의 현실을 걱정하는 블로그를 썼지만, KCIA가 우격다짐으로 민주화운동를 탄압하던 시대와 지금이 겹쳐져 보이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하게 쟁취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한 달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언론 테러를 아직도 관계자들이 추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의 보도 관계자들은 산케이 지국장의 잦은 야유조의 기사가 박 대통령에게 조바심을 내게 했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기사 자체의 질은 몰라도 언론의 자유, 즉 대립하는 입장의 발언권을 지켜야 마땅한 민주주의다. 사법 기관도 그렇지만 시민단체도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대학교수의 의견 표명을 봉쇄하려는 듯 민 형사 소송을 연발하는 사례를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제는 후퇴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다소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