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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7일 11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7일 11시 34분 KST

학기말 시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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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강의가 다 끝났습니다.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리는 날까진 채점도 마쳐야 합니다. 평가 시기와 겹쳐 해마다 성탄절이 그리 편할 수만은 없지요. 시험문제 내는 일은 채점보다 더 어렵습니다. 학부 과목인 '공학수학'의 기말고사 1번 문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x+y=y이면, x=0임을 보이시오." 중학생도 아는 사실을 증명하라 한 것입니다. 대학생들에게 저는 왜 이런 요구를 했을까요?

강의 주제인 선형대수는 연산 구조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집합을 구성합니다. 예컨대 동물의 집합을 떠올려보지요. 하지만 그런 집합엔 정해진 연산이 없습니다. 쥐와 닭을 더해 뱀을 얻는다는 식으론 일반적으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감정의 집합은 어떨까요? 물론 사랑과 미움을 더하면 애증이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선 흥미로운 질문일 수도 있겠고요. 다만, 그렇게 정의된 감정의 덧셈에 어떤 보편적 성질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더하기나 곱하기 같은 연산을 법칙화하려면 집합의 원소에 숫자를 대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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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실수)의 집합과 거기서 정의된 연산이 어떤 성질을 만족하는지 따져봅니다. 이들을 다 나열하는 대신 몇 가지 공리로 압축합니다. 이제 실수 집합의 연산법칙을 만족하는 모든 추상적 대상을 상상합니다. 그럼 우린 그런 대상을 실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동일한 법칙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이렇게 추상화와 일반화를 통해 개념을 정의하고 지식을 창출해왔습니다. 개념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지식의 체계인 셈입니다. 여기저기서 들어 뒤죽박죽 얽혀 있는 기존의 정보는 이런 체계의 이해나 구성 과정을 방해합니다. 무지보다 더 큰 장애물이지요. 따라서 학생들에게 그런 정보를 지우고 공부 대상의 논리 체계를 건축해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백지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듯 말입니다.

학부 과목의 기말고사 1번 문제는 명백해 보이는 명제지만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곱하기와 더하기의) 공리에서 이끌어내라는 뜻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논리적인 주장을 구성하도록 하는 거지요. 익숙함에 대한 경계와 앎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기대한다 할 수도 있습니다. 앎이란 추론 과정에 관한 이해를 포함하는데, 결과물을 자주 마주하다 보면 과정을 잘 모르면서도 내용을 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도 증명해야 하나요?"란 질문을 받으면 저는 이렇게 되묻습니다.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걸 당연하다 할 수 있을까요?" 공부가 익숙함에 맞서며 치열하게 의심하는 작업이라는 이야기도 학생들에게 전하려 합니다.

시험을 어떤 환경에서 치르면 좋을지도 생각해봐야 할 논점입니다. 이번 학기 대학원 강의 주제는 '글쓰기와 연구윤리'였습니다. 그런데 고립된 공간에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사람이 요즘 얼마나 있겠습니까? 외려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해야겠지요. 자료 검색은 물론이고 사전이나 맞춤법 검사기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쓰기와 연구윤리 과목은 무선인터넷에 안정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강의실에서 대학원생들이 클라우드에 바로 답안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공학수학 과목은 추론에 사용할 정보를 학부생들에게 제공하고 닫힌 공간에서 답안을 적게 하였고요. 아날로그형 수학 시험과 디지털형 글쓰기 시험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와 더불어, 시험 치르는 환경이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평가하기에 적합한지도 늘 고민입니다.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