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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15일 10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16일 14시 12분 KST

딱따구리와 헌법

헌법엔 과학이 두 번 등장합니다.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22조 2항엔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제9장(경제) 제127조 1항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에선 과학이 기술과 분리되지 않은 채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Ronald Phillips via Getty Images

은사시나무 숲에 움막을 짓습니다. 딱따구리 한 쌍이 둥지를 튼 나무에서 수십 미터는 떨어진 곳입니다. 움막이라고 해봐야 카메라 고정하고 자기 몸 하나 겨우 숨길 수 있는 공간이지요. 움막은 새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멀고, 숲에 상처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작습니다. 생물학자는 거기서 딱따구리 부부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세상으로 날려 보내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봅니다. 관찰과 기록에만 두세 달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연구자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은 말할 나위도 없겠고, 좋은 망원 렌즈와 고성능 카메라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요.

딱따구리가 태어나 홀로 날 수 있게 될 때까지의 과정이 생물학자는 왜 궁금할까요? 그 지식을 활용해 신약이라도 만들면 세상에 보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생태계 전체를 헤아리는 관점에선 한 무리의 새도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자는 그저 딱따구리가 좋아서 연구하려 했을 뿐입니다.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호기심이 연구의 계기였으며, 그 밖에 다른 목적은 없었습니다. 이런 연구를 국가가 시민의 세금으로 지원해야 할는지요?

올해 '전국 순회 과학정책 대화'가 네 차례 있었습니다. 과학정책을 경제논리로만 살펴선 안 된다는 데 많은 참석자가 공감했으며, 촛불 집회를 지켜보고 과학기술계의 민주화 수준을 성찰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토론회에선 헌법에 관한 논점도 제기되었지요. 헌법엔 과학이 두 번 등장합니다.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22조 2항엔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제9장(경제) 제127조 1항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에선 과학이 기술과 분리되지 않은 채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도 기초과학을 지원하긴 합니다. 응용과학과 공학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몰라도 언젠간 쓰일 수도 있으리란 판단이지요. 그럼 딱따구리를 좋아하는 생물학자의 연구는 어떨까요? 또 추상적 개념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파헤치려는 수학자의 연구는 어떨까요? 그냥 궁금해서 하는 연구라며 지원을 요청할 순 없을까요? 냉정히 따질 때 먹고사는 일과 관련이 없을 게 분명하다면 말입니다. 과학기술자 공동체 내부의 토론이 필요함은 물론이고, 세금 내는 시민들과 소통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할 문제라 여깁니다.

과학을 경제에 가두는 건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를 자유로움이 창의적 과학 연구의 토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딱따구리를 관찰하려 움막을 짓는 생물학자나 현실 세계와 별 관련이 없는 개념을 탐구하는 수학자도 한국에 꽤 있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작가나 예술가들처럼... 과학은 사유방식이자 문화입니다. 합리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힙니다. 과학을 기술에서 떼어내 이런 내용을 헌법에 담아보면 어떨까요?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렵고 자원은 유한하니까요. 그렇기에 더더욱 시민사회와 더불어 과학과 헌법에 관해 숙의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설령 같은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개헌은 시민적 합의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과학 관련 논점만 해도 이렇듯 간단치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