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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09일 06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11일 14시 12분 KST

세월호 300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억할 때

진실규명의 장애물은 정부여당만은 아니다. 더 큰 장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른 바 '세월호 피로증상'이다. 사건 발생 후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던 많은 국민들이 벌써 세월호를 잊고 싶어 한다. 계속 이야기해봐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변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괴롭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느냐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받지도 않은 보상금을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유가족들이 국민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폭언하는 엄마부대 같은 극단세력까지 등장해 그들의 아픈 마음을 후벼 파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9일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300일이 됐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들의 고통은 끝날 기약이 없다.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누가 뭐래도 아직 주검조차 수습하지 못한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죽을 이유가 없었던, 그리고 분명 구조될 수 있었던 가족들을 눈앞에서 잃은 유가족들이나,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창비사가 펴낸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바로 이들의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단이 단원고 희생 학생 13명의 부모를 인터뷰해 그들의 육성을 옮겨 적은 이 기록은 그저 짐작만 해왔던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은 울어야겠어

엄마 마음이 답답해

미워

사람들이 미워

우리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한숨을 쉬어보고

나 잘하고 있는 거야

달래도 보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우리 아들

모습에 애써 울지 않으려고

밀어내고 있는 나를 알아채는

순간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있다

단원고 2학년 4반 김건우군의 어머니가 쓴 어느 날의 일기 한토막이다. 그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글에서 "웃다가 울다가 먹다가"를 반복하는 자신을 자신이 봐도 이상하다며, 아들에게 엄마가 미치지 않도록 "꽉 붙잡아줘"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미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이들은 희생자들의 부모만은 아니었다. 형을, 누나를, 동생을 잃은 형제자매들의 고통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많은 경우, 그들은 자식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모를 생각해 자신의 슬픔을 표출조차 못하다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갖게 된 것이다. 하늘나라에 혼자 있을 형과 함께 있겠다고 부모 몰래 죽음을 계획하는 동생 이야기나 동생의 죽음을 겪고 외출조차 못하는 언니의 이야기는 세월호가 남긴 트라우마가 희생자의 유가족 전체에 얼마나 깊게 남겨져 있는지 보여준다.

사랑하는 가족을 그렇게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때론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분들도 많다. 자기 가족은 그렇게 떠났는데, 멀쩡히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원망을 하기도 하고,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이웃의 눈길을 피해 숨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록에 등장하는 부모들은 슬픔 속에 침몰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그 공감은 연대의 감정으로 발전했다. 다시 팽목항으로 달려가 아직도 주검조차 못 찾은 실종자 가족들을 가만히 안아주고, 용산참사 희생자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한 미사에서 "정의를 위해서 물러서지 말라"고 한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정의를 위해 물러서지 않으려면 진상규명을 제대로 해야 한다. 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그토록 자랑하는 나라에서 대명천지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채 수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밝혀내야만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더 이상 이런 야만적인 일이 재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를 구하는 그들의 싸움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과 가슴 아픈 양보로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들도 선임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설립준비단에 파견됐던 공무원들을 모두 파견해제한 폭거를 저지른 데서 보듯이 정부여당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뜻이 없다.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해 11월 수색중단 요청을 결단한 것은 선체를 인양하면 주검을 수습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건만, 정부는 막대한 인양비용을 거론하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진실규명의 장애물은 정부여당만은 아니다. 더 큰 장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른 바 '세월호 피로증상'이다. 사건 발생 후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던 많은 국민들이 벌써 세월호를 잊고 싶어 한다. 계속 이야기해봐야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변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괴롭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느냐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받지도 않은 보상금을 부풀려 이야기하거나 유가족들이 국민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폭언하는 엄마부대 같은 극단세력까지 등장해 그들의 아픈 마음을 후벼 파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정말 세월호를 잊고 이들의 고통에서 눈을 돌려도 되는 것일까? 유가족을 비롯한 희생자들을 돕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세월호 사태 이후 안산으로 이사가 세월호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 공간 '이웃'을 연 정혜신 박사는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을 돕기 위해 무슨 엄청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아주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도 희생자 가족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정 박사는 세월호사건처럼 외부적 문제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는 그 외부적 요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치유가 시작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들의 움직임이 바로 치유되려는 몸부림"이기 때문에 이런 그들의 몸부림을 이해해주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도울 수 있다는 게 정 박사의 생각이다. 비록 아주 작은 일이나마 이렇게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행하게 되면, "그것이 상처받은 사람들 마음속에 깊숙이 내려박히고, 바로 그런 만남, 그런 순간에 의해서 마음이 흔들리면서 치유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과 함께 눈물 흘리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도록 촉구하고 감시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세월호 가족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