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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02일 07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04일 14시 12분 KST

나의 희망버스 탑승기 | 불가능한 사회, 존엄, 예술

우리가 조현아의 땅콩회항 같은 작은 사회문제에는 간편하게 분노하면서도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C&M-밀양 송전탑 같은 거대한 사회문제에 관련된 문제를 냉소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그것을 차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경제적 가치를 신앙삼아 소비자로 살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거대한 사회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저 멀리에서 쓰러져오던 거대한 도미노는 어느새 우리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을 것이다.

좌) 쌍용차 굴뚝 위에 있는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 (사진=김정욱 페이스북)

우) 2014년 12월 27일 평택쌍용차 굴뚝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집회현장 (사진=홍태림)

희망버스를 타고 쌍용차와 코오롱으로

2014년 12월 27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희망버스를 탔다. 이 글은 내가 희망버스를 타고나서 느꼈던 지점들을 나열하고 정리해본 것이다. 이번에 내가 탑승한 희망버스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 이창근님이 있는 평택 쌍용차 굴뚝과 코오롱 정리해고투쟁위원회(이하 정투위)의 천막이 있는 과천 코오롱 본사 앞을 갔다. 코오롱 정투위는 올해로 10년간 투쟁했고, 쌍용차 해고노동자 연대는 6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내가 희망버스를 탄 가장 큰 계기는 혹한 속에 쌍용차 굴뚝 위에서 투쟁하고 있는 김정욱, 이창근님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두 분의 모습을 SNS와 기사를 통해서 볼 때마다 분노와 무력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코오롱 정투위의 활동은 쌍용차 노조의 투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생소한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희망버스를 타기 며칠 전에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살펴보고 나서야 코오롱 정리해고 사태를 그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앞서 내가 '코오롱 정투위는 10년간 투쟁했고'라고 말한 이유는 이날 집회에서 최일배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을 비롯한 11명의 정투위 동료들이 10년간의 투쟁을 공식 마감했기 때문이다. 코오롱 정투위는 끝내 노사합의를 보지 못했지만 '탐욕의 자본가들과는 어떤 현장에서라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0년간 코오롱 정투위는 코오롱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서 삼보일배, 고공농성, 집단단식, 불매운동, 천막농성, 행정소송, 최일배 위원장의 40일 단식 같은 방식으로 처절하게 싸웠다. 우리는 코오롱 정투위가 사측과의 투쟁을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기업에 의해 삶이 짓밟힌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희망버스와 함께한 코오롱 정투위의 이번 집회는 청소년 타악단과 게이합창단 G보이스,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C&M 해직노동자처럼(다행히도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던 2014년 12월 30일에 C&M 노조는 노사합의를 보는 것에 성공했다.)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할 것임을 재차 선언하는 자리였다. 나는 코오롱 정투위의 이번 집회를 지켜보면서 코오롱 정투위가 차후에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옳은가

기업의 일방적인 정리해고로 삶이 파괴된 노동자들은 지금도 처참한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하늘과 땅을 헤매며 울부짖는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 해직노동자와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의 삶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자. 최근 대법원은 2009년 당시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며 서울고법의 2심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쌍용차 측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며 제출한 회계자료 간에 숫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원심을 깬 대법원은 과연 투명하고 적법한 판결을 내린 것일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이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온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중앙에 위치한 인물은 현재 쌍용차 굴뚝에서 농성 중인 김정욱 사무국장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쌍용차의 비극은 상하이 자동차로부터 시작한다.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차와의 투자계약을 어기고 고급SUV 기술과 쌍용차가 국고지원을 받아서 완성한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을 헐값에 가로챘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쌍용차 정리해고가 시행되기 전에 안진회계법인은 쌍용차의 유형자산 가치하락에 따른 손실이 5,177억 원인데 순매각가액이 2,814억 원이어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쌍용차는 순식간에 부채비율과 순손실이 엄청난 회사로 둔갑했다. 상하이 자동차의 고의부도신청을 돕기 위해서 안진회계법이 회계조작을 한 증거는 금속노조와 민변 노동위원회에 의해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은 '주식회사 외부감사법'을 위반한 것이다. 안진, 삼정회계법인의 회계조작을 방조한 정부와 산업은행은 쌍용차를 인도 마힌드라에 매각했다. 이러한 한국정부와 산업은행의 공조 덕분에 마힌드라는 고급SUV 기술과 정리해고가 완료된 회사를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상하이 자동차의 기술 먹튀를 방조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하려고 노동자들이 일을 못해서 쌍용차가 부실기업이 되었다고 몰아붙였다. 이후 쌍용차 노동자 2,600여명은(희망퇴직자 1900여명, 무급휴직자 450여명, 해고자 150여명) 부당한 정리해고를 당했다. 쌍용차 노조는 일자리 나누기와 퇴직금을 담보로 한 대안을 사측에 제시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쌍용차 노조는 공장 점거파업을 감행했다. 이에 정부는 용역깡패와 경찰을 동원해 쌍용차 노조의 점거파업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좌)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내부의 70m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 (사진=연합뉴스)

우) 과천 코오롱 본사 앞 코오롱 정투위 천막 (사진=최일배 트위터)

불가능한 사회와 삶

한국은 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 논리를 탑재한 상태로 열심히 내달리고 있다. 도대체 신자유주의가 뭐길래? 여기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 연구소 소장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빌려보도록 하겠다. 홍기빈 소장의 설명을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영리활동, 산업, 사회, 생태분야를 경제적 가치 확장이라는 단일논리로 지배하는 것이다. 고유한 조직 원리를 가진 산업사회의 각 영역을 경제적 가치로 정렬하는 신자유주의는 안전장치가 없을 때 사회를 철저하게 파괴한다. 사회는 우리의 다양한 삶이 펼쳐지는 공동의 장이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로 모든 가치가 통합되는 순간 사회는 삶이 불가능한 장으로 빠르게 변해간다. 내가 김정욱 이창근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삶이 도미노처럼 무서운 속도로 연달아 쓰러지고 있다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펼쳐져야 할 사회가 불가능한 공동의 장으로 변해간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회구성원은 불가능한 사회와 맞서는 이들의 신념과 고통을 자신에게 당장 닥친 일이 아니라고 냉소하거나 방관하는 것 같다. 이 땅 위에서 사회의 불가능과 맞서는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국가와 국가의 구성원들에게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리해고로 인한 노사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가치로 인한 갈등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이미 닥쳐있거나 후에 닥쳐올 거대한 불행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욱, 이창근님이 오른 70m 높이의 쌍용차 굴뚝은 연달아 쓰러지고 있는 우리의 삶을 멈춰 세우는 최전방 중 하나다. 이 땅위에 불가능한 사회가 도래한 것은 국가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고유한 각 영역이 조화롭게 조직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의무를 방기하고 경제적 가치만 추구한 탓이 크다. 국가가 산업사회의 각 영역을 어떻게 조화롭게 조직할 것인지는 대한민국헌법과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는 대한민국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겨울 대법원의 쌍용차 판결과 이석기 의원의 대법원 상고심(서울고법 2심에서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혐의는 무죄로 판결됐다.) 결과를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면 국가가 헌법과 법률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국가가 방대한 기능부전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국가의 방대한 기능부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당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조현아의 땅콩 회항같은 작은 사회문제에는 간편하게 분노하면서도 기륭전자-스타케미칼-쌍용차-C&M-밀양 송전탑 같은 거대한 사회문제에 관련된 문제를 냉소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그것을 차마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거나 경제적 가치를 신앙삼아 소비자로 살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거대한 사회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저 멀리에서 쓰러져오던 거대한 도미노는 어느새 우리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나는 편지지와 핫팩이 동봉된 편지봉투를 평택 쌍용차 굴뚝 앞에 마련된 '굴뚝 편지 우체통'에 넣고 왔다. (편지 전문)

사실 나도 국가의 방대한 기능부전에 대해서 감당할 엄두가 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당장 내가 이러한 문제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삶을 직시하고 의지를 실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번에 내가 했던 작은 실천은 희망버스를 타고 70m 굴뚝 위에 올라가 있는 김정욱, 이창근님에게 응원편지를 보내는 것과 코오롱 정투위의 마지막 집회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중의 하나이다.

이번 쌍용차 집회에서 아쉬웠던 점

나는 쌍용차 굴뚝 앞에서 김정욱, 이창근님을 마주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참담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연대하기 위해서 모인 많은 사람을 보니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쌍용차 집회는 고압송전탑과 싸우는 밀양의 할머니도 오셔서 연대발언 해주셨고 이창근님의 부인 이자영님이 편지를 낭독해주기도 하셨다. 집회 말미에는 '존엄' 글자를 만드는 카드섹션이 진행되었다. 쌍용차 집회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으나 한 가지 나의 마음에 걸리는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번 쌍용차 집회의 핵심어인 존엄에 관련된 것이다.

2014년 12월 27일 평택쌍용차 굴뚝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집회현장을 가로막은 철책 반대편에

쌍용차 보안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홍태림)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이야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집회장과 쌍용차 공장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의 반대편에는 쌍용차 측 보안 관계자와 경찰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집회현장에서 존엄이라는 단어가 울려 퍼질 때마다 철책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왜 그랬을까? 인권이 인간사회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면, 인권은 인간의 이 세상 속에서 욕구를 충족해야 하고 그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욕구 충족은 자연이나 동물 같은 다른 존재의 희생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이 존엄하다는 선언에는 인간 외의 존재는 존엄하지 않다는 함의도 깔려있다. 만약 인권이 자연이나 동물의 존엄을 인정한다면 인간은 굶어 죽어야 한다. 이처럼 광의의 인권에서 유래된 존엄은 다른 존재를 배제하는 배타성을 가진다. 쌍용차 집회참가자들이 존엄을 외친다면 철책 반대편의 사람들은 존엄하지 않거나 존엄을 파괴하는 자들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나는 존엄이라는 단어가 가진 신적인 가치관이 존엄을 저해하는 자들과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자본가이든 노동자이든지 간에 결국에는 누구도 온전한 삶을 지향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철책 반대편의 사람들도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삶이 무너질 이들이다. 다만 그 순서가 뒤로 밀려났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쌍용차 집회의 핵심어가 존엄이 되기보다 철책의 내외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무엇이 돼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쌍용차 정리해고로 목숨을 끊은 희생자와 6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존엄이나 투쟁이라는 단어로도 이들의 고통을 표현하고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사회운동이 전술로써 존엄과 투쟁을 주창하더라도 전략적인 차원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삶의 차원으로 포용할 수 있는 지향점도 필요하다. 그래야 전투에서 승리해도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

좌)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최일배 위원장이 단식 40일째인 2014년 12월 14일 병원에 긴급후송되었다. (출처=코오롱정투위, 진보노동뉴스)

마치며_사회-정치와 사회-정치적인 예술

앞서 밝혔듯이 나는 이번에 희망버스를 처음 탔다. 나는 쌍용차 굴뚝 앞에 선 순간 정리해고로 절망했을 노동자들의 고통이 피부로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쌍용차 굴뚝과 코오롱 본사 앞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다. 이는 마치 듀스의 <우리는>에 나오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가사와 유사했다. 희망버스 안에서 평택 쌍용차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비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확인서를 작성하는 시간이 있었다. 확인서에는 이름과 연락처, 직업, 버스비 납입 여부를 적는 칸이 있었다. 나는 확인서를 받은 순간 직업란에 무엇이라고 써야 할지 고민했다. 예술가라고 적어야 했을까? 아니면 큐레이터 혹은 평론가라고 적어야 했을까? 내 직업을 적어야 할 자리 위에는 누군가가 자신의 직업을 시민이라고 적어놨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내 직업을 적는 칸에 시민이라고 적었다. 내가 시민이라고 확인서에 적은 것은 복합적 요인이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예술 제도에 인증된 적도, 인증을 시도한 적도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별로 확고하지 않다. 물론, 근래의 나는 글도 쓰고 자칭 독립기획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지만, 예술가로서 자아가 형성될만한 경험과 시간이 쌓이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예술 자체보다는 사회-정치와 예술이 접맥되는 방식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글에서 내가 강박적으로 예술을 언급하는 것도 내가 사회-정치와 예술의 접맥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사회-정치와 예술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사회-정치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나는 사회-정치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예술보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삶이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정치가 작동해야 예술도 유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불가능한 사회 속에서 예술이 유효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나는 직업을 적는 칸에 시민이라고 적었던 것 같다. 내가 희망버스 안에서 직업을 적는 칸에 시민이라고 써 놓긴 했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래도 나는 예술가?'라는 콩알만 한 자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희망버스를 내려서 쌍용차 굴뚝 앞에 서는 순간 그나마 남아있던 나의 예술가 자아가 순식간에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 쌍용차 굴뚝과 코오롱 본사 앞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이냐는 자문(自問)이 나의 머리를 때린 것이다. 쌍용차 굴뚝 앞에서 나는 예술가였을까. 아니면 시민이었을까. 아니면 애초에 이러한 현장에서 내가 누구이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을까. 나는 왜 이런 자문을 했던 것일까.

2013년 코오롱 스포츠 브랜드 런칭 40주년을 맞아 진행된 '필름 프로젝트' (사진=코오롱 스포츠 홈페이지)

좌) 2013년 5월 최일배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이 트위터로 박찬욱, 김지운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포스팅 (사진=최일배 트위터)

우) 코오롱 스포츠 40주년 월페이퍼를 촬영한 박찬경 감독의 모습이 사진 우측에 보인다. (사진=코오롱스포츠 스타갤러리 월페이퍼)

내가 누구로서 사회-정치문제와 마주해야 할까에 대한 물음은 예술과 사회-정치가 어떻게 접맥될 것이며 동시에 예술이 그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이어진다. 사실 나는 희망버스를 타고 나서 사회-정치적 예술이 사회-정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날 많은 사회-정치적 예술이 사회-정치 앞에서 정말로 무력하다면 사회-정치를 다루는 예술이 사회-정치를 소재화했거나 혹은, 사회-정치를 다루는 예술이 필요 이상으로 제도화된 탓일 것이다. 예를 들어, 박찬욱, 박찬경이 감독한 <청출어람>(2012)은 코오롱 스포츠 런칭 40주년을 맞아 제작된 단편영화다. 여기서 내가 <청출어람>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에 내가 탑승한 희망버스의 종착점이 코오롱 본사 앞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미술작가, 평론가, 기획자인 박찬경은 80년대 민중미술과 후기 식민주의적 인식에 대한 미술담론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그렇다면 박찬경은 사회-정치적인 예술을 다루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찬경이 사회-정치적인 미술을 다룸에 있어서 코오롱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와 정투위의 10년 투쟁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면 박찬경은 미술가로서의 자아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아를 따로 운영하는 사람일까. 2013년 5월 최일배 코오롱 정투위 위원장은 트위터로 박찬욱, 김지운 감독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2013년 5월은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청출어람>이 영국 에든버러 영화제에 초정된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는 예술장 안에서 종종 목격되는 일들이다. 나는 이런 예술장의 이중성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문제라고 확신하는 나를 반대로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경험이 짧아서 문제라고 속단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내 생각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아무튼 예술장의 이러한 문제는 내가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몸으로 경험해봐야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구할 수 있을 때 사회-정치와 예술이 어떻게 접맥될 수 있는지도 명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