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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9일 05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9일 14시 12분 KST

통제되지 않는 공권력은 폭력

연합뉴스

11월 14일 토요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와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의 태도는 광포하고 폭압적이었다. 경찰은 헌재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은 차벽을 집회시작 전부터 쌓아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물대포를 조자룡 헌칼 쓰듯 사용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퍼부어 수없이 많은 부상자를 발생시킨 것도 모자라 생존권 투쟁에 나선 농민 한 분을 중태에 빠트렸다. 강력한 수압의 물대포를 지근거리에 있는 농민의 얼굴에 직격한 것인데, 직격당한 농민은 몸을 추스릴 새 없이 아스팔트에 그대로 머리를 찧었다. 경찰의 물대포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농민의 몸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시위대의 몸을 집요하게 강타했다.

나는 경찰의 광기어린 진압을 보면서 80년 5월의 광주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대포를 총으로, 2015년 11월의 서울을 1980년 5월의 광주로 바꾸면 될 일이다. 시위대를 조준하는 저격수와 저격수의 저격에 나뒹구는 시민, 저격당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 나선 시민을 또다시 저격하는 저격수. 80년 5월 광주를 유혈진압했던 신군부가 그랬듯 경찰은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

경찰은 시위대의 폭력행사를 문제삼는 모양인데, 애초 경찰이 차벽을 치고 시위대의 행진을 원천봉쇄하지 않았던들 시위대가 경찰이 문제삼는 폭력을 행사했을지 의문이다. 물론 이번 사태를 통해 경찰에 대응하는 시위대의 방식도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경찰이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난사하는 마당에 이에 물리력으로 맞서는 것이 현명해 보이진 않는다. 설사 차벽을 일부 돌파해 청와대 인근까지 진출한들 그게 무슨 소득일 것인가? 지금 열리는 집회와 시위는 정부와 여당을 향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곤란하다. 관건은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방식의 집회와 시위의 조직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해 엄격히 통제받지 않는 공권력은 세상에서 가장 악마적인 힘이자 폭력이다. 우리가 국가폭력에 그토록 비판적인 이유는 헌법과 법률의 통제를 받지 않는 국가폭력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과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 가운데 으뜸이 전쟁을 포함한 국가폭력이다. 이에 비하면 개인이나 단체가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크기나 폐해는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국가폭력이 지닌 자원의 크기와 부작용이 너무나 압도적이기 때문에 국가폭력은 사인이나 조직의 폭력과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없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민간인 학살, 고문, 불법체포, 불법감금 등의 끔찍한 국가폭력을 경험한 나라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버젓이 살아있는 나라에서 아직도 11월 서울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국가폭력이 자행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무섭다. 이런 일이 끝이 아닐 것이기에 더 근심스럽다.

11월 14일 밤의 집회를 새누리와 조중동과 종편이 구경할 리 만무다. 온갖 저주와 모욕을 시위대에 쏟아붓는 건 기본이고 파시스트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등장했다.(이완영 "미국에선 경찰이 쏴도..." 박인숙 "일년내내 시위...야만적 국가") ("시위대 두들겨 패야"TV조선의 막말)

그 중 압권은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시위대가) 폴리스 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시위대를) 패 버리지 않느냐. 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을 받기도 한다", "최근 미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이 죽은 일 10건 중 8~9건은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 범인으로 오해받은 사람이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는 걸로 인식해 경찰이 총을 쏴서 죽여도 그걸 당당한 공무로 본 것", "이런 것들이 선진국의 공권력"이라는 발언이었다.

나는 이게 단순한 실언이나 망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의원의 발언은 새누리를 비롯한 극우의 속내를 대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우가 그리도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이승만은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테러를 일삼았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을 폭력이 지배하는 겨울공화국으로 만들었다.

본디 극우는 이성과 합리와 설득과 토론을 경멸한다. 극우는 폭력과 테러를 숭배하고, 지배와 복종을 찬미한다. 진정 염려되는 것은 박근혜와 새누리 안에 극우적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의 힘이 너무 강하고, 이들에게 열광하는 유권자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을씨년스런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