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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5일 10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5일 14시 12분 KST

변하지 않는 나라

연합뉴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20살을 넘은 사람이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이성과 논리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데 완벽하게 무력하다. 제 아무리 정교하고 합리적인 논리체계와 단단한 근거를 지닌 이론이라고 해도 시골 촌부의 생각에 동요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이론은 이미 그 이론에 동의한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이론과 논리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세상은 진즉에 좋아졌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힘은 이성이 아닌 감성에서 나온다. 정서적 충격과 심리적 반향만이 온갖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사람의 마음을 직격해 흔들고 마침내 각성과 변화를 이끌어낸다.

대한민국은 반북주의(북한은 체제 외부의 적이고, 남한 내에는 항상 북한과 내통하는 무리들이 있다!), 물질만능주의(구매력과 물질적 풍요만이 인생의 최고 목표다!), 영남패권주의(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메인스트림이 전라도를 내부식민지로 삼고 반전라도 정서를 악용해 대한민국을 다스린다!)에 완전히 포획된 시민들로 가득한 나라다. 이런 시민들에게 반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영남패권주의를 비판하고 탄핵하는 이론과 논리체계는 별 효험이 없다. 반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영남패권주의는 공포와 탐욕과 편가르기라는 본능과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북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영남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시민들의 완고한 마음을 변화시킬 힘은 엄청난 정서적 충격뿐이다.

​우리에게 그런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무현의 자진과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건 계기다. 노무현이 자진한 직후 노무현을 추도하는 글을 매체에 기고한 적이 있다.("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대통령이었다"​) 이 글은 지금 읽어봐도 슬프다. 더 슬픈건 "노무현은 정의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가 염치를 알고 정의에 눈 뜰 수 있게 될까? 꼭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글 속 나의 바램이 너무나 헛된 기대였다는 걸 뼈저리게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자진을 '뇌물현'의 죽음이며 나라망신이라던 자들이,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과 유족들을 오해하고, 저주하고, 모욕한다. 노무현과 세월호보다 더 시민들의 감성의 변화를 촉발시킬 사건과 계기가 있을까? 어려울 것 같다. 설득도, 감동도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기대할 수 있을까?

​​역사를 보면 한 사회가 가진 역량이상으로 나아갈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내 보기에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그런 시기였다. 물론 그때도 수다한 문제가 있었고, 태평성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지닌 실력이상의 점수를 벼락치기로 맞은 시기였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정말 형편 없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아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 멘털리티가 인격화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게 우리의 현주소고, 민낯이다. 도대체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