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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5일 07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15일 14시 12분 KST

아베담화는 반성이 아니다

gettyimageskorea

'아베담화'는 실망스러웠다. 평론가의 관점을 취한 '아베담화'에는 가해의 주체를 찾기 어려웠고, 고노담화 등 과거의 반성에 기대고 있었으며, 구차한 변명이 등장했고, 적반하장의 기미도 보였다. 아베의 담화 내용 중 주요한 대목을 분류해보자.

"러일전쟁이 식민지배 아래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곡학아세식 역사관)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표명해왔다.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 동남아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에 있는 아시아 국민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기울여왔다"(과거 반성에 의존)

"식민지배로부터 영원히 결별해 모든 민족의 자결과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가해주체 모호)

"전장의 그늘에서 깊이 명예와 존엄에 상처받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가해주체 모호)

"일본이 세계공황에 휩쓸리면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고, 힘의 행사에 의해 해결하려 시도했다. 그로 인해 만주사변 등을 일으켰다"(구차한 변명)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인구의 8할이 넘는다.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적반하장)

- 아베 담화, 식민 지배 직접 사과 없었다(한겨레 8월 14일)

무릇 '반성'은 사실관계를 적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정확히 표현하며, 확정된 사실관계에 기초해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사죄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반성을 받는 대상에게 최대한의 위자(慰藉)를 하며, 장래를 향해 책임 있는 약속을 할 때 유의미하다. 그렇지 못한 '반성'은 '반성'이 아니며 오히려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거나 조롱이기 쉽다.

'반성'의 기준을 이렇게 설정할 때 아베담화는 '반성'이 아니다. 아베담화에는 일제가 대외팽창전략을 취해 조선 등을 강제로 병탄해 식민지로 만든 사실, 만주사변 및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아시아를 혈겁에 몰아넣은 사실, 식민지 조선의 꽃다운 처녀들을 포함해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욕해소의 도구 역할을 했고 그 과정에 일제가 관여했던 사실 등이 명시되지 않았다.

아베담화에도 식민지배와 위안부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만 '일제'라는 가해주체가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주어'가 없다. 만주사변의 배경으로 세계공황을 든 것, 전후 세대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으름장(?)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요컨대 아베담화는 반성의 내용과 형식 모두 낙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베 신조에게 화를 낼 기력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베 신조에게 분노하기가 힘들다. 대한민국이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나라인데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축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우울한 광복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