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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8일 05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8일 14시 12분 KST

질문하지 않는 자, 질문받지 않는 자

나는 지금 기이한 사진 한장을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 속 장면은 정말 이상하다. 박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병기 실장 등 청와대 비서관들은 모두 서서 박 대통령의 담화를 듣고 있고,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다소곳이 앉아서 박 대통령의 담화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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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봐서는 담화장이 아니라 강의장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비서실장을 위시한 청와대 비서관들은 기립해서, 기자들은 앉아서 박 대통령의 낭독에 귀기울이는 이 사진은 지금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사진 속 청와대 참모들은 잔뜩 경직돼 있고, 기자들의 손에는 노트북이 없다. 대통령은 언제나처럼 하고 싶은 말만, 적혀 있는 대로 읽었다. 항상 그랬듯 기자들의 질문이나 추궁은 없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 추궁하지 않는 기자처럼 나약하고 무의미한 존재도 드물다. 기자는 시민을 대신해 묻는 자이며, 잘못을 추궁하는 자여야 한다. 무장해제(?)당한 채, 선생님의 훈시를 듣는 학생처럼 앉아있는 기자들은 오늘 언론의 상태가 얼나마 위중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의 정확히 반대편에 질문받지 않는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진 4번의 대국민담화에서 제대로 된 질의응답을 한 적이 없다. 박 대통령은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낭독의 형식으로 하곤 했다.

'소통'과 '설득'과 '대화'는 박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소통'과 '설득'과 '대화'를 거부하는 박 대통령에게서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퍼스낼러티를 읽는 것, 지적 무능과 그에 수반되는 자신없음을 파악하는 건 불가피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적 리더십과 전혀 친하지 않고, 지적 능력도 떨어지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다.

질문받지 않는 대통령과 질문하지 않는 기자의 기괴한 조합이 시민들의 정신과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기자는 물어야 하고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