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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6일 10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6일 14시 12분 KST

우리는 진정 해방됐나?

한겨레

정부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광복절 전날인 금요일(14일)을 임시공휴일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나의 관심은 '임시공휴일'이 아니라 '광복 70주년'에 있다. 광복(光復)이라는 한자를 풀면 "빛을 되찾는다"는 뜻일 게다. 빛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잃었던 빛을 되찾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결국 '광복'에서 말하는 '빛'은 자연의 빛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으로 새기는 것이 옳다. 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던 국가의 주권을 되찾은 날이니 광복절이 대한민국 최대의 국경일이 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광복'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2차 대전의 양대 전승국이라 할 미국과 소련이 순전히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38선을 경계선으로 해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켰던 건 남과 북 어디에도 외세에 맞서 통일국가의 수립을 추동할 정치세력과 시민들의 주체적 역량이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분단은 도둑처럼 은밀하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한민족에게 왔다. 곧이어 한반도를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 지금까지 남과 북 모두를 옭죄고 있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분단과 전쟁에 더해 대한민국에서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건국의 주역이 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제하에서 축적한 기술관료로서의 실무능력과 축적된 재산, 발달한 생존본능, 고도의 조직력 등을 버무려 미군정의 하위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하다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주요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일제가 남긴 적산을 불하받는데도 발군이었기에 신생 대한민국의 산업기반 대부분이 그들의 손에 떨어졌다. 요컨대 일제식민통치시절에 조연에 불과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대한민국에서는 주연이 된 것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제 민족의 반대편에 섰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에 대한 환수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권력과 지위와 부를 독차지했다.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은 자들, 일제의 식민지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자들, 일제의 편에 서서 제 민족을 탄압하고 겁박하고 수탈했던 자들이 터럭 하나 훼손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제시대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분과 지위가 상승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나라로 출발한 것이 왜 문제인가? 무릇 국가의 기본은 신상필벌이다. 잘못을 한 자는 죄상을 밝혀 그에 합당한 벌을 주고, 잘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상을 줘야 국가의 기본이 선다. 신상필벌은 정의의 최소한이기도 하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일체의 단죄 없이 오히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신생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주인이 된 사태는 신상필벌이라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 원칙이 완전히 파괴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후 대한민국에서 정의와 윤리와 상식은 시궁창에 묻히게 됐다.

광복 70주년을 앞둔 지금은 대한민국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나라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어 유감이다.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대부분 사망했거나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의 후예들이 대한민국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단적으로 만주군 장교였던 박정희를 아버지로 둔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이며, 집권여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김무성 역시 선친의 친일반민족행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

물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들에게 선조의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연좌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손들이 제 조상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고 해석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주요 공직을 맡거나 맡으려는 사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조상을 자랑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생각만 해도 참혹한 일이다. 불행히도 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조상으로 둔 후손 중 힘세고 돈 많은 사람들이 제 조상의 행적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박근혜와 김무성 역시 그렇다.

우리에게 진정한 해방과 광복은 오지 않았다. 진정한 해방과 광복이 오기는 할 것인가? 갈 길은 먼데 날이 저문다.

* 미디어오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