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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2일 08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2일 14시 12분 KST

대통령의 동생은 헌법을 부정하나?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이 설화를 일으켰다. 그녀가 한 아래의 발언들을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일본의 신사참배는 조상을 찾아가는 것인데, 100년 전 조상님이 하신 일이 잘못됐다고 찾아가지 않고 참배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패륜", "한국이 일본의 신사참배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

"1980년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천황 폐하가 허리를 굽히면서 사과했는데 왜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과하라고 하느냐"

"일본이 우리 땅에 제철소도 지어주고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모태가 될 일들을 많이 해줬는데 밤낮 피해 의식만 갖고 살게 되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위안부에 끌려가서 고통받은 분들 이젠 정부가 국민이 국가 내에서 잘 보살펴 드려야 할 때가 됐다"

"한일 관계가 정상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과거의 문제를 내세워서 발목을 잡으면 비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한일 협정을 맺을 때 이미 한국 정부가 사과를 받아 포항제철도 건설됐고 (일본 덕분에) 고도성장의 모태가 되지 않았냐"

"그런 뜻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한일 관계를 더 공고히 하겠다 발표했고 앞으로는 그런 관계로 가야 된다"

(대통령 동생의 망언...박근령 "일본 신사참배 관여는 내정간섭")

박근령의 인식과 발언은 그릇된 사실관계에 기반해 있을 뿐더러, 반역사적이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박근령은 신사에 일제가 자행한 침략전쟁의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신사참배를 단순히 조상참배와 효의 문제로 치환하고, 신사참배에 대한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비판할 수 없다.

박근령은 세상물정에 너무 어두운 것 같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잘못을 사죄하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에 적극 나섰다면 과거사를 문제삼을 사람도, 일본 총리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계속 요구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기왕에 했던 알량한 사과를 기회만 나면 번복하곤 했다. 박근령의 인식과는 달리 정상적인 한일관계를 과거의 문제로 발목잡는 건 일본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일본이 지어준 제철소 운운하는 박근령의 발언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전형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근대적 제도와 인프라를 조선에 이식, 착근함으로써 야만과 전근대에 머물던 조선에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근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이는 곧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시발이 되었다는 역사관이다. 일제에 의한 조선 병탄과 강점이 없었다면 근대화가 불가능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역사관은 자학사관에 불과하며, 문명의 발전을 오직 경제관계를 중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유물론의 아류다. 박근령이 그런 식민지근대화론에 깊이 경도된 것처럼 보이는 건 유감이다.

박근령의 인식과 발언이 무엇보다 문제인 건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건 대한민국이 일제의 식민지배를 부정하고 지양하는데서 국가의 정통성을 찾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옹호하고 찬양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이자 반역일 수 있다. 나는 박근령의 인식과 발언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듯한 기미를 읽는다.

박근령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이다. 박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박근령은 반헌법적 발언을 한 혐의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박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 박 대통령의 입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