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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5일 07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5일 14시 12분 KST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잔인한 영겁회귀

홍대 등의 핫플레이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간명하되 도식적이다. 이것은 일종의 영겁회귀와도 같다. 먼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통이 괜찮은 곳에 분위기 좋은 공연장, 갤러리, 카페, 식당 등이 입주해 장사를 한다. → 사람들이 몰려든다. →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장사 등이 잘 된다. → 입소문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 땅값과 보증금과 임대료와 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견디다 못한 임차인들이 변두리로 쫓겨난다. → 건물주들만 행복하다.

한겨레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말이 유행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을 보면 젠트리피케이션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사례들도 많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 지역의 노후한 주택 등으로 이사 가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 · 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선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의 공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들 상점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이에 대규모 프랜차이즈점들도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된다. 그 결과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는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화된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서울의 경우 종로구 서촌을 비롯해 홍익대 인근, 망원동, 상수동, 경리단길,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젠트리'라는 말이 지닌 본래의 근사한 의미와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젠트리피케이션에는 피냄새와 통곡소리가 짙게 배어 있다. 삼청동, 북촌,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상수동, 이태원, 경리단길, 합정동, 연남동, 망원동 등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삼청동 등은 상가 등의 임차인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마를 새 없는 장소이고, 핫(hot)한 지역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는 건물주들의 웃음이 그치지 않는 사회경제적 공간이다.

홍대 등의 핫플레이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간명하되 도식적이다. 이것은 일종의 영겁회귀와도 같다.

먼저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교통이 괜찮은 곳에 분위기 좋은 공연장, 갤러리, 카페, 식당 등이 입주해 장사를 한다. → 사람들이 몰려든다. →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되고 장사 등이 잘 된다. → 입소문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더 몰려든다. → 땅값과 보증금과 임대료와 권리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 견디다 못한 임차인들이 변두리로 쫓겨난다. → 건물주들만 행복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인 홍대 등의 핫 플레이스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땅값이 치솟고 임대료가 치솟아 지갑이 날로 두둑해지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누리는 행복 중 많은 부분이 정당하지 못하다. 이들이 누리는 부의 아주 많은 부분이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건물주들은 홍대 등이 핫 플레이스가 되는 데 기여한 것이 거의 없다. 홍대 등이 핫 플레이스가 된 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투입한 각종 인프라 덕분이고, 홍대 등을 특색 있는 명소로 만드는데 문화자본을 투입한 임차인들 때문이다.

각종 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다.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앙등한다. 건물주들은 단지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고 있다. 합법의 외피를 두르고는 있지만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홍대 등의 핫 플레이스에서 장사하다 쫓겨난 임차인들의 소원은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 한다. 청소년을 비롯한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의 꿈이 건물주가 돼 임대료를 받으며 놀고 먹는 것이라는 말도 회자된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런 추세와 경향을 바꾸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 미디어오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