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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4일 04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4일 14시 12분 KST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인가?

abluecup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출발의 평등' 및 '계층이동의 유동성'을 빼놓는다면 공정한 평가가 아닐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 단행된 농지개혁은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형식을 띄긴 했지만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을 취한 북한의 토지개혁에 비해 열등하지 않았다. 남한의 농지개혁은 2차 대전 이후 건국된 제3세계 국가들이 했던 농지개혁의 모범으로 꼽히는데, 이 농지개혁은 남한에 세 개의 엄청난 선물을 제공했다.

하나는 북한에 의한 전면남침으로부터 남한을 지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농지개혁을 통해 자기 땅이 생긴 농민들은-한국전쟁 발발 직후 남한 시민들의 대부분은 농민이었다-북한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거나 협력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소작농에 유리하고 지주에게 불리한 방식의 농지개혁을 통해 남한 내에서 지주계급이 사실상 소멸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지주계급이 산업화의 최대 걸림돌인-남미를 보라-만큼 비폭력적 방식을 통한 지주계급의 소멸은 이후 산업화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마지막 하나는 시민 대부분이 평등한 출발선에 서게 됐다는 사실이다. 출발의 평등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난데, 사회 구성원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신분상승이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열린 사회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를 신분이동 혹은 계층상승이 유동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장한 채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그런대로 사회통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출발의 평등' 및 '계층이동의 유동성'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출발의 평등' 및 '계층이동의 유동성'을 믿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대한민국을 지탱해왔던 '출발의 평등' 및 '계층이동의 유동성'이 빠르게 그리고 철저히 허물어지고 있다. 아래 기사는 열린 사회에서 닫힌 사회로 전환한 한국사회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계층 상승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빈곤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국책 연구기관에서 나왔다. 최상위 고소득층으로의 소득 쏠림 현상도 계속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박명호 장기재정전망센터장과 전병목 선임연구위원이 공동연구한 '소득분배 변화와 정책과제: 소득집중도와 소득이동성 분석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저소득층 가구의 비중이 2008년 24.7%에서 2010년 24.3%, 2012년 26%로 거의 고착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저소득층은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 놓인 가구의 소득)의 절반 이하인 계층을 말한다. 4인가구 월소득이 약 202만원 정도(2014년 기준)다. 중위소득의 50~150% 사이면 중산층, 그 이상이면 고소득층에 속한다. 이 결과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재정패널자료를 이용해 분석했다.

소득계층 간 이동률을 보면 계층 이동 없이 저소득층에만 머물고 있는 비중(저소득층→저소득층)이 2008~2009년 전체 계층의 18.4%에서 2011~2012년 20.3%로 늘어났다. 이는 전체 저소득층의 80%에 육박하는 수치다. 이 비중은 2008~2009년에는 74.4%, 2010~2011년 79.2%, 2011~2012년 76.9%였다. 보고서는 "빈곤의 고착화가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사회 통합과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 소득분배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소득층 가구가 중산층으로 올라선 비율은 2008~2009년 6.1%에서 2011~2012년 5%로 줄어들었다.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계층 상승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복지정책이 취약한 상태에서 비정규직 등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고, 노인빈곤층이 심각한 탓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이 없어, 중산층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일자리다. 하지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자료를 보면, 비정규직이 852만명(2014년 8월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45.4%를 차지하고 있다. 고용도 불안한데 임금은 정규직이 100만원일 때 49만9000원을 받는 데 그친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격차가 심하고, 영세자영업자도 많아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8.5%에 달할 만큼 심각한데, 노인계층은 노동시장 참여 자체가 어려워 계층 이동이 어렵다.

...최상위 고소득층으로의 소득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개인소득 기준으로 상위 1%(2012년 기준)가 전체 소득의 11.66%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위 1%는 1억1330만원 이상 개인소득자로, 이들의 평균소득은 2억2200만원이다. 상위 5%(평균소득 1억880만원)는 전체 소득의 28.56%를 가져갔고, 상위 0.01%(평균소득 29억9860만원)는 1.57%를 차지했다. 이는 국세청 내부 자료를 이용해 근로소득, 금융소득, 사업소득을 통합해 개인소득을 분석한 것이다.

최상위 고소득층으로의 소득집중도는 최근 5년 동안 늘어나는 추세다. 상위 1%는 2007년 전체 소득의 11.08%를 가져갔는데, 이 비중은 2010년 11.71%, 2011년 12.20%, 2012년 11.66%로 상승세를 보였다. (기사 링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가 말해주듯 한국사회 내에서의 계층이동은 완벽히 고착상태다. 저소득층에서 태어난 사람은 가난의 대물림을 탈피할 방법이 도무지 없다. 자산도 없는데다 직업도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직업이 변변치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다.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좋은 직업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부자 아빠에게 태어난 사람은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는데 더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갖는다. 이들이 불행할 확률은 적다.

출생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리 만무하다. 천하를 주름잡던 제국도 신분이동 혹은 계층이동이 고착상태에 처하면서 붕괴했다. 신분이동 혹은 계층이동이 막힌 사회에서 메인스트림은 타락하고, 하류인생들은 절망한다. 대한민국도 이미 그 악순환의 고리에 갇혔다. 자산과 불로소득에 대한 과감한 증세 등을 필두로 하는 조세개혁, 교육 및 의료 등에 대한 획기적인 제정투입을 통한 균등한 기회 보장 등의 조치가 패키지로 집행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빙산에 좌초하는 타이타닉 신세가 될 것이다.

* 미디어오늘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