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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3일 13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13일 14시 12분 KST

정몽준의, 정몽준을 위한 눈물

초로의 남성이, 그것도 부와 권세와 명예를 모두 가진 남성이 목놓아 우는 까닭을 부와 권세와 명예 중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몽준의 울음이 자신을 위한 혹은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또렷하다. 정몽준의 눈물은 정몽준 밖을 향해 있지 않다. 정몽준의 눈물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것도,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연이는 죽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정몽준의 울음은 철저히 사적이며 폐쇄적이다.

연합뉴스

정몽준의 눈물을 보았다. 아니 눈물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그건 통곡이었다. 통곡하는 정몽준을 보는 느낌은 복잡했다. 초로의 남성이, 그것도 부와 권세와 명예를 모두 가진 남성이 목놓아 우는 까닭을 부와 권세와 명예 중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정몽준이 우는 시늉을 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정몽준의 울음이 가식적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정몽준의 통곡은 분명 감격에 겨운 나머지 나온 것이었고, 정몽준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치르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음을 방증한다. 더욱이 경선 막판 불거진 아들과 아내의 발언들 덕분에 정몽준은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몽준의 울음이 자신을 위한 혹은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도 또렷하다. 정몽준의 눈물은 정몽준 밖을 향해 있지 않다. 정몽준의 눈물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것도,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연이는 죽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정몽준의 울음은 철저히 사적이며 폐쇄적이다.

직업정치인이 눈물을 잘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공감능력과 측은지심(봉건의 냄새가 나지만, 더 적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은 반드시 지녀야 한다. 그런 능력과 마음이 없다면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제도와 법률의 마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범위는 넓다.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혼혈아만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다. 이렇다할 권력과 자본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잠재적 사회적 소수자다. 우리 중 대부분은 사회적 소수자이거나 언제라도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몽준이 정계에 입문한 이후(그는 무려 7선 의원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입법활동을 했다는 흔적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입법활동은 고사하고 그가 대표발의한 법률안 자체가 드물다. 정몽준의 대표발의 실적은 박근혜에 필적할 만하다. 입법활동을 소홀히 하는 입법기관이라니.

나는 정몽준이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며 그가 어떤 대한민국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다만 정몽준에 앞서 대한민국을 다스렸던 기업인 출신 전직 대통령은 안다. 이명박이 바로 그 사람이다. 대한민국을 기업으로, 자신을 기업의 CEO로, 시민들을 종업원으로 알았던 이명박 통치 5년 동안 대한민국은 난장판이 됐다. 정몽준은 이명박과 다를 것인가? 어떻게 다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