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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4일 0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4일 14시 12분 KST

메르스가 병원 밖으로 퍼지면 국가 재난

역학전문가인 국립암센터 기모란 박사는 17일을 메르스 사태의 분수령으로 본다. 이날까지 지역사회에서 3차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현 수준에서 이번 사태가 잦아들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이다. 이미 병원 내 3차 감염자가 발생했다. 병원 내 3차 감염과 지역사회(병원 밖) 3차 감염은 개념이 다르다. 병원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므로 2차, 3차 감염이 일어나기 쉬운 장소다.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반도를 드리우고 있다. 낙타를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라에서 '낙타병'(메르스를 옮기는 동물이 낙타) 환자가 35명, 사망자도 2명이나 나왔다. 중동을 제외하곤 전 세계에서 메르스 발생 1위란 불명예도 기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메르스가 국내에 유입된 것은 중동 사람이 아니라 농업 관련 회사 직원인 Q씨(68)를 통해서였다. Q씨는 4월 18일∼5월 3일 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을 방문했다. Q씨가 4일 카타르를 경유해 인천공항에 들어올 때만 해도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 입국검사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메르스 잠복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11일부터 발열·기침 증세를 보인 Q씨는 A·B·C·D 등 네 곳의 병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11∼17일에 치료받은 A·B·C 병원에서 Q씨는 자신이 "중동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의료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만약 세 곳 의료진이 Q씨의 중동 방문 사실을 알았다면 메르스가 옮겨지는 환자와의 '근접 접촉'은 피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A의원 간호사 1명, B병원 간호사 1명, C의원 의사 1명이 메르스에 걸렸다.

증상이 악화되자 Q씨는 18일 D종합병원으로 옮겼다. D병원 의사가 처음으로 메르스를 의심해 Q씨의 검체를 국립보건연구원에 보냈다. 20일 국내 첫 메르스 감염 환자가 확인된 것은 D병원 의사 덕분이다.

D병원은 아직 언론에서 실명이 거론된 적이 없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이 병원 의사에겐 정부가 큰 훈장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만약 이때 진단이 안 돼 2차, 3차 환자가 발생한 뒤에 메르스를 확인했다면 상황은 훨씬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메르스 감염 상태에서 중국행 비행기를 탄 남성 환자 Z씨(44)도 5월 21일 방문한 X병원에서 자신이 확진환자의 아들임을 밝히지 않았다. 25일 Z씨의 아내가 병원 측에 뒤늦게 알렸으나 X병원은 다시 이틀이 지난 뒤에야 보건소에 신고했다. 방역의 성패를 가르는 신고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저버린 의사에겐 200만원 이하, 격리 요구에 불응한 환자에겐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는 '솜방망이' 처벌 규정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도 볼 수 있다.

정부가 메르스의 국내 유입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 것도 사태를 자초했다. 그동안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람의 조류 인플루엔자, 인간 광우병(vCJD), 에볼라에 걸린 한국인 환자나 국내 유입 사례가 없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도 시인했듯이 메르스의 전파 능력이 의외로 높다는 사실도 간과했다. 요즘 같은 지구촌 시대에 해외 유입 전염병에 대한 대국민·의료진 홍보와 교육이 부실했던 것도 화를 키웠다. 만약 Q씨, Z씨, X병원 의사가 메르스의 위험성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번처럼 대응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료기관의 경험 부족도 메르스 확산을 도왔다. 사우디 등 중동 국가에 의료진을 미리 파견해 실제 메르스를 접한 경험을 가진 현지 의료진과 핫라인을 구축해 두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메르스 전문가가 국내에 한 명도 없다면 방역은 처음부터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

방역의 기본은 국민을 패닉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전염병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3일 현재 1300여 명이 메르스로 인해 자기 집이나 병원 등에서 격리 생활 중이다. 역학전문가인 국립암센터 기모란 박사는 17일을 메르스 사태의 분수령으로 본다. 이날까지 지역사회에서 3차 환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현 수준에서 이번 사태가 잦아들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이다. 이미 병원 내 3차 감염자가 발생했다. 병원 내 3차 감염과 지역사회(병원 밖) 3차 감염은 개념이 다르다. 병원은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므로 2차, 3차 감염이 일어나기 쉬운 장소다. 이미 사우디는 병원 내 5차 감염까지 경험했다. 또 병원 내 3차 감염은 2차·3차 여부를 구분하기 애매할 때가 많다. 그러나 만약 국내에서 병원 밖 3차 감염이 현실화된다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메르스의 지역사회 3차 감염 사례가 된다. 우리 국민에겐 대재앙이다.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메카를 찾는 이슬람의 성지순례 명절인 2012∼2014년의 '하지(Hajj)' 기간에도 메르스의 지역사회 3차 감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불안 요인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일선 병원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들을 돌봐야 할 의사 다수가 격리돼 치료에 동참하지 못한다. 아예 일시적으로 폐쇄한 병원도 나왔고 이 병원 환자를 인근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일도 힘들어졌다.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국내 메르스 환자가 605명을 넘어서면 이들을 격리 치료할 병실이 없다. 이 같은 국가 비상사태가 오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