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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4일 06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4일 14시 12분 KST

케냐에서 만난 중국 | Chinese Babies를 아시나요?

Kenya Citize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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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의 한 도로공사 현장에서 본 중국어 위험표시

처음 케냐에 갔던 것은 2010년이었다. 이미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투자에 대한 뉴스나 연구들을 많이 접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피부로 느낀 것은 나이로비 한복판에서 도로공사를 표시하는 중국어 현수막이나 표지판들을 보면서부터였다.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보통은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남성분들이었는데, 덕분에 중국인처럼 생긴 여성인 나의 모습은 중국 사람들의 의문을 종종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나이로비에서 3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케냐 중부 니에리(Nyeri)의 읍내에서 동네 아저씨와 함께 걸어가던 중에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중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이들은 무엇인가를 짓기 위한 자재를 구하러 나온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아마도 내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동네 아저씨는 "너의 사촌들은 너를 왜 저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니?"라고 농담을 던지셨고, 그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우스웠는지 깔깔거리면서 넘어간 적도 있다.

아기의 아빠를 찾습니다

사실 나의 연구는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과 거의 무관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연관이 생겼지만). 그래서 나는 연구 때문에 케냐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도 별로 중국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고, 관심도 특별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내가 늘 상대하고 고민해야 하는 주제였다. 특히 15개월 동안의 본격적인 현장연구 기간 중에는 매일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차이니즈"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나 "칭총칭총" 하면서 중국어 소리를 흉내내는 별명을 감내해야 했고, 나를 당연히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케냐 사람들과 중국에 대한 대화를 반복적으로 해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는 바로 Chinese Babies, 즉 중국 사람과 케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들에 대한 것이다.

"너 티카로드 주변의 중국 아기들에 대해서 들어봤니?"

언젠가 우연히 만난 한 대학의 교수님이 던진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의 근거가 되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는 있다고 대답했다. 티카로드(Thika Road 또는 Thika Superhighway)는 2012년에 완공된 케냐는 물론 동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거대 고속도로인데, 이 도로 공사를 맡은 회사가 중국 회사들이었다. 그래서 중국인 공사관리자들이 와서 현지 노동자들을 지도하고 기술을 전수했는데, 이 사람들이 도로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케냐 여성들과 관계를 해서 아기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한 사건은 한 케냐 여성이 아기의 아빠를 찾고 싶은데 찾을 수가 없어서 경찰을 불렀고, 회사 측에서 사람들을 모두 불러다가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이 아기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회의 사람들의 생김새를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이 케냐 사람의 입장에서도 중국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겨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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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아기 아빠를 찾는 여성에 대한 잡지기사

나는 케냐에 갈 때마다 정말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 소문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했는데, 결국 생김새로 따지면 사촌처럼 보이는 한국인인 나에게 묘하게 불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못마땅할 때도 있었다. 앞의 교수님과의 대화에서도 이 이야기가 소문일 뿐이지 사실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랬더니 교수님은 그 일이 정말로 있었다고 들었다면서 궁금하면 뉴스나 신문을 검색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에 정말로 검색을 해봤다. 그래서 이 사건이 심지어 케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저녁뉴스에 보도까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련 뉴스 동영상). 마치 정말 중국에서 태어난 것 같은 모습의 아기를 안고 아기의 아빠를 찾아서 공사장을 떠도는 케냐 여성의 모습과 아기의 생김새를 신기하다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뉴스였다. 나중에는 어떤 잡지(Matatu Today 2011년 7월호)에서 이 사건의 정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찾기도 했다. 이 기사에도 아이를 출산한 케냐 여성은 생김새가 비슷한 중국 사람들 중에서 아기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기의 양육과 이 젊은 여성이 포기한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아빠를 찾지 못한다는 것에 화가 난 아기의 할머니까지 나섰는데, 결국 중국 회사측에서 돈을 지불하여 무마하기로 했다고 마무리하고 있다 (실제로 이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사실 이런 일이 특별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현지 여성과 외국인 남성의 성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론 등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과의 관계나 태국이나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 등에서 태어난 한국인 아버지를 둔 아이들과 관련된 일들에서도 종종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케냐에서 일어난 이 일은 내게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케냐 사람들도 케냐 여성과 서양인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소위 하프 카스트(Half-Cast)라고 비하해서 부르는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익숙한 면이 있다. 이런 일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비일비재했던 일이고, 최근에도 관광지를 중심으로 현지 여성 또는 남성의 성을 사고 판매하는 유럽 관광객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케냐 사람들도 중국인 노동자와 그 혈육으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설어 했고, 또 놀랐던 것 같다. 약간은 인종주의적인 경향으로 "모두 똑같이 생긴 중국인들" 때문에 아기의 아빠를 찾지 못했다고 이 사건을 비하하고 비웃기도 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너희들은 왜 다들 똑같이 생겼니?"나 "야 칭총, 왜 너희의 이름은 접시가 깨지는 소리처럼 들리니?" 등의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사실상 중국인이었고 중국에 대해서 궁금한 점들을 나에게 묻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인은 아니지만 똑같이 생겼다는 점에서 중국인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처음에는 그저 불편하기만 했던 중국 아기들에 대한 대화가 중국인 또는 한국인인 나와 케냐 사람들 사이에 생각을 교류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나는 많은 케냐 사람들이 이 사건을 농담처럼 취급하고 중국인들을 놀리는 것에는 익숙하면서도 자신들의 맥락으로 쉽게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기회가 되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밖에서 54개국이나 있는 이 대륙을 하나의 나라처럼 취급하고, 이 거대한 땅의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축소하지 않느냐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검은 피부를 가진 존재로 뭉뚱그리는 사고방식과 이 사건은 연관성이 있지 않냐고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그랬더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았고, 아시아에 얼마나 다양한 나라들이 있는지 중국인과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들이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설명도 너무나 새롭게 듣는 분들도 있었다. 중국 이외의 아시아가 존재한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사실 중국인과 케냐인 사이에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 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뉴스에 등장한 그 딱 한 사례였을 수도 있고, 또 아빠를 찾지 못했다는 것도 그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사태의 하나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소문과 농담 그리고 심지어 인종적 비하까지 낳은 이 사건은 중국이라는 새로운 경제, 정치, 문화 교류의 상대를 대대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현대의 아프리카 사회들이 겪을 진통을 예고하는 부분도 있었다. 거대한 중국의 인구와 자본, 그리고 기술이 아프리카의 지도와 생활을 바꾸고 있는 것은 자명해지고 있고, 이 교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소통과 갈등 그리고 새로운 이해의 통로에 대해서도 점차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