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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5일 08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5일 14시 12분 KST

파리와 베이루트, 그 불편한 차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다발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이지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심란한 마음은 파리가 겪는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겪는 공포와 충격에 충분히 공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위해 공분하고 해시태그를 공유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럼에도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다. 엊그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는 폭탄테러로 4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에 대한 세계인들의 분노라든가 해시태그 같은 것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beirut

11월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현장에 군인과 시민들이 모여 있다.

세상이 베이루트의 사태를 국제뉴스의 단편으로 흘려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파리가 겪은 테러는 유례없이 조직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파리는 프랑스를 넘어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도시이며 유럽의 강국 프랑스의 수도라는 점도 특별하겠다. 프랑스의 위기는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공유하는 위기이며 서구사회 전체가 느끼는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세상은 레바논보다는 프랑스에서 전해지는 뉴스에 더 귀를 기울인다.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사태가 벌어졌을 때, 너도 나도 샤를리 엡도라고 일어나는 세계인들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있었던 147명의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케냐 가리사(Garissa)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한 세계인의 분노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물론 있었지만 그 규모와 영향력이 비교적 미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garissa

올해 4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시민들이 기리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테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소말리아나 팔레스타인의 일상이다. 레바논이나 이집트에서는 월례 행사일 수도 있고, 케냐나 나이지리아에서는 연례 행사처럼 일어난다. 거의 언제나 수많은 도시와 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테러와 전쟁으로 죽음을 당하지만 국제뉴스 한 귀퉁이의 숫자로 지나가는 그들에 대해서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며 일어서주는 유명인사들은 거의 없다.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제대로 셀 수도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저녁뉴스에서 한번 들어보기도 어렵다. 0000을 위해 기도한다며 SNS에 공유의 물결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뭔가 여러모로 씁쓸하다. 목숨을 잃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위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에 공감하지만 그 애도와 공분에서 느껴지는 어떤 미묘한 차이도 불편하다. 파리에서,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에서, 그리고 세상 곳곳에서 떠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