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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7일 06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7일 14시 12분 KST

우기 이야기 | 우리는 어둠을 배경 삼아서 다 같이 웃었다

전화를 하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 어떤 느낌이 있었다. "아, 전기가 나갔구나. 그래서 전화기 충전을 못하고 있구나." 그래서 연락은 되지 않아도 분명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멀쩡한 신발을 신은 나도 걷는 것이 고역이었다. 마을 초입에서 늘 소리경쟁을 하는 가스펠 노래들과 복잡한 리듬의 힙합 음악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전기가 정말 나갔다는 생각을 하면서 느릿느릿 진흙이 엉겨붙은 걸음을 옮겼다.

나이로비의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들이 떨어지는 때는 소우기라고 불리는 1-2개월 정도의 짧은 우기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때에는 작은 마을은 물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전기는 종종 나간다. 하물며 전기를 몰래 끌어다가 쓰는 지도에도 없는, 소위 슬럼(빈민가)으로 불리는 마을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가 나간 마을은 고요해서 아기들의 울음소리만 들린다. 이곳의 집을 만드는 주재료는 얇은 양철판인데, 그 얄팍한 칸막이 사이로 골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기도 한다.

진흙 때문에 평소에는 신나게 뛰어 놀던 아이들이 가겟집이나 집에 틀어박혀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얼굴이 반갑다고 언니가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 아가도 문간으로 뛰어나와 그 작은 발꿈치를 들어올리며 양팔을 들어 내게 내민다. 울퉁불퉁하고 쓰레기로 범벅이 된 빈민가의 길도 혼자 잘도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가지만 진흙길을 걸어내기는 어려운 모양인지 내가 할머니집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함께 데려가 달라는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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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가를 들어 품에 안았다. 아가의 몸은 작은데 아가를 안고 진흙과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릎 밑으로 옷과 다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그저 아가를 떨어뜨리지 않고 고작 몇 미터 떨어진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있는 할머니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걸었다. 어느 순간 내 옆에는 아가의 언니와 그 사촌인, 할머니의 또 다른 손주가 싱긋이 웃으며 걷고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가족들이 한 집 건너 이웃에 살면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돌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라 아이들은 가깝고 먼 혈육들과 어울려 자라고, 어떤 이를 찾는 손님은 그이의 가족과 이웃 모두의 손님이다.

나보다는 가벼운 걸음으로 먼저 도착한 언니는 전기가 나가 캄캄한 집 안으로 "할머니, 타이가 왔어요(냐냐, 타이 아메쿠자)!"라고 외친다. 어둠을 뚫고 할머니가 "어디에(와피)?"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문 앞에 당도한 내가 아이 대신 곧바로 "여기요(하파)!"라고 대답하니,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다같이 웃는다. 나는 "전기가 나갔죠(스티마 이메엔다)? "라고 말하는데, 할머니는 "전기가 나갔어(스티마 이메엔다)"라고 동시에 말해서 우리는 어둠을 배경 삼아서 또 한 번 다 같이 웃었다.

이제 또 그 우기다. 낮에는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지만 밤에는 또 비가 올 것이다. 우기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은 셀 수 없는 밤낮을 정전 속에서 보내겠지만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정전이 없기를 바라면서 그 어둠 속의 웃음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