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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8일 10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8일 14시 12분 KST

나이로비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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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아이폰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나를 위해 친구가 안 쓰는 거라고 카톡이나 하라면서 줬다. 조금 버벅거리지만 나이로비에 있는 동안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는 카톡도 하고 사진도 찍고 참 잘 사용하고 있었다.

귀국하기 열흘 정도 남았던 때였나? 15개월의 생활을 정리하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교통체증과 치안 문제로 악명이 높은 지역에서 마타투 (Matatu;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미니버스) 창밖을 내다보면서 감상에 빠져 있었다.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가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약간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고, 창문이 살짝 열려 있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마타투는 정차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창문을 거칠게 열더니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아이폰을 낚아챘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흔한 수법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는데, 그런데 또 모든 것이 마치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가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으로 밖을 내다보는데, 아이폰을 낚아챈 친구가 너무 급했던 나머지 그걸 내 옆 창밖에 떨어뜨린 것이 보였다.

나는 아이폰의 하얀 뒷면을 멍하게 쳐다보면서 '저런, 화면이 다 박살 났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무심코 닿지도 못할 손을 밖으로 내밀었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했고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한쪽에서는 한패인 듯한 사람이 다가오는 듯했고, 또 한쪽에서는 행인인 듯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근처에 먼저 도착한 그 행인은 정말 자연스럽게 아이폰을 주워서 다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화면은 말짱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참 자연스럽게 "아싼떼 싸나 (Asante sana;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고, 받아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사진은 매일 업데이트하고, 잃어버려도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건 내게 유용한 물건이었다. 같이 타고 있던 승객들을 둘러보니 모두 눈이 땡그래져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아줌마 한 분은 '왜 창문을 닫지 않았냐'면서 야단야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집에 가면 하느님께 감사하라고 하신다 (대부분의 케냐 사람들은 종파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천주교를 포함하는)인들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었지만 뭔가 멍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케냐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운도 좋았지만 매사에 신중하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별로 큰일을 당한 적이 없었다. 내 가방을 면도칼로 찢은, 자주 다니는 길에 있는 소매치기 정도가 나를 살짝(?) 놀라게 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없는 내 주머니를 '목숨을 걸고' 노리는 그이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도둑질이 발각되면 '군중재판'에 의해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돌을 맞고 죽을 수도 있다. 언젠가 친구가 사는 가난한 동네에서 남의 집에 놓여 있던 헌 신발 두 켤레를 훔치다가 들켜서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은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가난과 경찰의 부패가 낳은 안타깝고도 무서운 군중에 의한 심판이다.

그런데 그 날에는 기분이 약간 달랐다. 그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고 무서운 일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강탈'의 충격은 쉽게 가시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가 너무 약하고 작게만 느껴졌다. 시내에 도착해서 약간은 멍한 기운으로 겨우 다리를 일으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웠다. 내가 15개월 동안, 아니 수년 전부터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했던 도시에 대한 열정을 나도 모르게 잃어버릴 것이 두려웠다.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부정적인 일을 겪으면서 불평을 하고 고정관념을 갖고 나이로비를 떠나는 것을 보았는데, 나 역시 그중의 하나가 될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웠다. 결국은 이방인의 한계에 가로막혀 버렸다는 생각에 실망스러워질 것 같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가장 익숙한 거리에서 집이 있는 은공(Ngong) 쪽으로 가는 마타투, 111번을 타러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111번을 타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익숙한 노선, 공간, 사람들이 고팠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은공으로 안 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자주 보는 한 111번 노선 회사의 차장이었다. 그이는 몰랐겠지만, 친숙한 그 얼굴이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멍했던 마음에 다시 온기가 찾아드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에 갈 거라고 하니까, 그이는 "그럼 오늘 우리 차 타고 가"라면서 저 쪽에 손님을 태우고 있는 자기네 차를 가리켰다. 그 차장은 손님 하나 더 채우는 생각이었을 뿐일 수도 있지만 나는 마치 보디가드라도 만난 기분으로 차장 자리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뭔가 안심이 되는 마음으로 가방을 부둥켜 안고 피로에 지쳐 잠이 들었다.

시간이 별로 지나지는 않았는데 이미 늦은 밤시간이라 가로등이 없는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에서 깬 나는 혹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았는지 캄캄한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그 앞에서 내 모습을 본 차장은 씩 웃으면서, "바도, 바도 (Bado, Bado; 아직, 아직)"란다. 그때,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멍멍함이었는지 충격이었는지 모르지만 불편했던 기분이 다 가시는 것 같았다. 두려움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 밤, 다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내 물건을 강탈하려고 했던 이가 딱하다. 그리고 여전히 그 도시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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