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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9일 05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19일 14시 12분 KST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째를 낳으라구요?

하나 보단 둘이 좋고, 둘 보단 셋이 좋다는 걸 그 누가 모르랴. 하나 보단 둘이 있을 때 그 행복이 배가 되고 아이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된다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면 둘째, 셋째가 무슨 소용일까. 자. 애를 하나 낳든, 둘을 낳든 당사자가 아닌 이상 신경을 끄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육아에 대해 훈수 두지 말자. 엄마들도 꿈이란 게 있지 않나. 아이의 인생이 소중한 것만큼, 엄마들의 인생 또한 소중하다.

[얼렁뚱땅 육아일기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째를 낳으라구요?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아들 녀석이 두 돌을 넘기면서, 내 일상에도 소소한 행복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아직 말이 트이진 않았지만 주관이 뚜렷해진 덕분에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게 됐고, 아무것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초보엄마의 티도 이젠 제법 벗어났다.

더불어 지난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방치했던 내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갖기 시작했다. 대충 아기로션만을 발랐던 얼굴에 화장품을 꼼꼼히 바르기 시작했고, 질끈 묶기만 했던 머리도 미용실에 가 예쁘게 다듬기 시작했다. 또,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집 근처 요가 학원에서 하루에 한 시간 운동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아이를 낳은 지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제법 '행복하다' '이제 사람답게 사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가 주변에서 가끔 들린다. "둘째를 낳아야 한다" "하나만 있으면 외로워서 안 된다"는 소리. 누가 모르나.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성격이 못돼 먹은 나로서는 그 소리가 곱게 들리지 않는다. 지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어떤 힘듦을 겪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툭툭 내뱉는 저 말들이 무척이나 불쾌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쉬운 육아란 없다지만, 내 육아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깜깜하고도 긴 터널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줄곧 혼자 걷는 기분이었다. 옆에서 전심으로 도와주는 남편이 있었지만, 아이 옆을 24시간 동안 지켜야 했던 건 나였기에 친정 엄마에게도 채 털어놓지 못할 만큼 많이도 힘겨웠다.

자궁이 뜯겨 나가는듯한 엄청난 고통을 12시간 동안 생으로 겪었지만, 결국 수술을 통해 만난 아이.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다른 신생아들과 참 많이도 달랐다. 먹고 자고 싸고... 신생아의 전형적인 패턴을 예상했지만 아이는 먹으면서도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싸기 전에도 울고. 24시간 중에 절반 이상을 '애앵애앵' 거리며 울었다. 예민, 그 자체였다. 씨익~ 웃는 배냇짓도 거의 하지 않았다. '과연 이 아이는 언제 웃을까'란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아이였지만, 나는 이 아이가 매우 무서웠고 겁이 났다. 산후조리원 퇴소를 앞두고 오죽하면 산후조리원 원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넸을까. "엄마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아이가 자주 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아들 녀석은 치료약도 없다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영아산통(이 이유조차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을 앓았다. 뱃속 가득 찬 가스 때문에 아이는 밤낮없이 울었고, 밤이면 더 심하게 울었다. 하도 우는 녀석 때문에 밤이면 윗집에서 뭐라 할까 전전긍긍했고,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새벽 마다 청소기, 헤어 드라이기를 수시로 작동시켰다.

잠투정도 우주 최고였다. 우는 아이를 한 시간 반 동안 달래 겨우 재워 놓으면 정확하게 30분 딱 자고 깨어나 다시 징징대기를 일쑤였다. 때문에 나는 매일 우울했고, 가끔은 울었다. 우는 아이를 향해 "나보고 어떡하라고" 하소연도 했지만,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자는 틈, 그 30분 안에 부엌에 서서 끼니를 해결할 때마다 '이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계속 울기만 하는 이 아이와 24시간을 붙어 있으면서 나는 나날이 피폐해져갔고, 우울함은 극에 달했다.

돌 지나고도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정상적인 발달을 보인 아이들의 90% 이상은 15개월 이전에 걷는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지만, 아들 녀석은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만의 시계가 있으니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마음먹었지만, 다짐과는 달리 그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고 힘겨웠다. 수개월 째 변화가 없는 아이를 보면서 마음은 늘 무거웠고 숨이 막혔다. (아이는 이후 22개월 무렵, 아무렇지도 않게 '으읍'하는 기압 소리와 함께 혼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가장 소망했던 내 직업을 버리고 온전히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온 지난 2년. 참 많이도 행복했다. 그리고 많이 웃기도 했다. 가끔은 이 아이의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과는 별개로, 내 스스로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힘겹게 길고 긴 터널을 지나왔음을 알기에 다시 그 길로 가고 싶지 않다.

하나 보단 둘이 좋고, 둘 보단 셋이 좋다는 걸 그 누가 모르랴. 하나 보단 둘이 있을 때 그 행복이 배가 되고 아이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된다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면 둘째, 셋째가 무슨 소용일까. 나에게 '둘째 필수론'을 강조하는 이들 가운데 그 누구도 엄마인 내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하나만 있으면 하윤이가 외로워서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는 시어머니 또한 내 육아의 힘듦을 이해해주기 보다는 앞으로 하윤이가 걸어 나갈 인생만을 걱정하는 것 같아 야속할 따름이다.

자. 애를 하나 낳든, 둘을 낳든 당사자가 아닌 이상 신경을 끄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육아에 대해 훈수 두지 말자. 엄마들도 꿈이란 게 있지 않나. 아이의 인생이 소중한 것만큼, 엄마들의 인생 또한 소중하다. 이미 글러먹은 게 아니란 말이다. 꽤 멋있는 말들을 가득 채워 넣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엄마들의 꿈 따위 다 집어치우고, 사실 난 정말 솔직하게 둘째를 갖게 되면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칠까봐 그렇게 평생을 전업주부로만 살게 될까봐 그게 가장 두렵다.

추신: 둘째는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다 계획에도 없던 둘째를 임신한 우리 언니에게 심심하고도 깊은 위로를 전한다. 토닥토닥. 입덧이여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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